눈과 마음이 커지는 신문 - 충청타임즈 창간 14주년에 부쳐
눈과 마음이 커지는 신문 - 충청타임즈 창간 14주년에 부쳐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1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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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1. 과거

`눈은 가끔씩 커질 수 있다. 작위적이든 인공적이든,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의한 것이든 눈은 제멋대로 커질 수 있다.'

충청타임즈 창간 14돌에 가장 먼저 떠오른 화두는 `눈과 마음이 커지는 신문'이라는 슬로건이다. 참으로 절묘하다. 신문을 읽어 눈과 마음이 커질 수 있다는 스스로의 다짐은 신문을 만드는 사람이거나 독자이거나를 가리지 않고 충분히 희망적인 말이다.

신문에 등장하는 소식들은 대체로 평범함의 범주에서는 벗어나 있는 일이다. 잠에서 깨어나 밥을 먹고, 별 일없이 출근해 노동을 하고, 귀가하는 일상이 신문에 날 일은 없다. 그러니 신문에 난 일은 대체로 눈을 크게 뜨게 만드는 일인데, 충청타임즈가 지향하는 `눈'은 그만큼 세상을 넓고 크게 바라볼 수 있게 유도하는 감각의 영역에 해당한다.

그런 맑은 눈을 충청타임즈가 가질 수 있게까지 겪어왔던 고난은 다시 기억하지 않아도 늘 새삼스럽고, 한때 동료 기자였던 내 입장에서는 지울 수 없는 일종의 죄의식으로 길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눈은 하다못해 의술의 힘을 빌려 인위적으로 키울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마음의 크기는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한단 말인가.

14년, 인간의 나이로 치면 `죽은 김정일이도 무서워서 못 내려온다.'는 중증의 중2병에 해당하는 시기인데, 과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키울 고단했던 시절의 초심은 기억하고 있는지. <광장>의 소설가 최인훈은 그의 마지막 소설 <화두>의 서문에 “기억은 생명이고 부활이고 윤리”라고 썼는데, 나는 `눈'과 `마음'을 화두로 삼는 신문이야말로 기억의 합당한 통로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여태.

#2. 현재

아침 출근길. 큰길 옆에 닭장차가 줄지어 서 있고, 방패를 들고 진압복을 입은 경찰들이 위협적으로 도열해 있다.

군부독재와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당당하게 맞섰던 20세기의 모습이 회상된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2019년 여름 청주의 도심에서 보여진 풍경이다. 꽉 막힌 도로를 천천히 가다 보니 언뜻 보이는 것은 새로 지어진 건물에 붉은색 페인트로 함부로 내갈긴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거칠고 황급한 글씨. 그리고 가난해 보이는 늙은 사람들과 덩치가 산만한 청년들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눈에 보기에도 토지자본의 탐욕과 거기에 휩쓸려 뜬 눈으로 궁지에 내몰리는 것으로 보이는 대치가 엿보인다.

다음날 저녁. 주민회의가 있어서 근처 동네사람들을 만났는데, “그토록 가슴 떨리는 일이 벌어졌는데 어째 뉴스에는 하나도 안 나오는 겨?” “기자는 한 명도 안보이던데, 무슨 뉴스가 나오것서. 갸들에게는 돈두 안 되는 일 일텐디.” 불신의 푸념은 현장의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주변의 일을 가장 커다란 뉴스로 생각하고 있음이 씁쓸하게 상기된다.

14년을 보내는 동안 `우리의 상처, 시대의 상처를 자기의 상처처럼 아파해야 한다.'(정현종. 김수영에 대해 中)는 명제는 여전히 가능한가.

#3. 미래

김수영 시인의 50주기를 맞은 올해. 그를 기리는 산문집 <시는 나의 닻이다>를 읽었다. 거기 시인 김해자의 글「이 무수한 반동이 좋다」에서 읽은 한 줄. “시대를 넘어서 보편적 울림을 가진 언어는 살아남아 미래에 전달된다.”라는 문장에서 서성거린다.

신문이, 온통 문장으로 채워진 신문이 글을 읽지 않는 세태를 한탄하며 미래를 불안해한다. 문장과 언어에 차이와 거리는 여전히 무지막지하게 존재하는가. 전파와 영상, 이미지가 문장을 위협하는 시대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대는 다시 느림으로 돌아섬을 선망하는 쪽으로 회귀하고 있고, 따라서 심금을 울리는 언어가 문장이 되는 신문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신문은 확고하게 사람을 흔들리지 않는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시대 상황과 사회적 한계를 초월하는 `보편적 울림을 가진 언어'는 충청타임즈가 변함없이 추구하여야 할 가장 큰 무기. 우리가 마음을 키우고 열어야 세상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눈과 마음이 커지는 신문. 충청타임즈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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