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사 생각나게 하는 제74주년 광복절
윤봉길 의사 생각나게 하는 제74주년 광복절
  • 오세민 기자
  • 승인 2019.08.1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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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 제재 등 여파로 항일 정신 되새기는 방문객 증가 전망
충의사
충의사

 

올해로 제74주년을 맞는 광복절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매헌 윤봉길 의사의 생애와 정신을 기리는 예산군 소재 ‘충의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올해는 광복절과 함께 일본의 경제 제재로 인한 각계의 반발이 맞물림에 따라, 윤봉길 의사의 항일 정신을 되새기려는 방문객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순종 융희 2년인 1908년 6월 21일 도중도 생가에서 윤황 공의 장남으로 태어난 윤봉길 의사는 15세 때 천재 소리를 듣기도 했으며, 19세 때인 1926년에는 야학회와 독서회를 창설해 문맹퇴치에 힘썼고 1927년에는 농민독본을 집필해 농촌부흥운동과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압제를 목도한 윤 의사는 1930년 3월 6일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라는 비장한 유서를 남기고 망명길에 올라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상해사변 전승축하 식장을 폭파하는 거사를 일으켰다.

이후 현장에서 일본군에 체포된 윤 의사는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 오사카 위수형무소에 수감됐으며, 같은 해 12월 19일 총살형을 받아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이 사건은 중국 등 세계에 알려졌고, 중국의 지도자 장제스는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격찬한 바 있으며, 윤 의사에게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중장이 추서됐다.



/예산 오세민기자
ccib-y@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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