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대응조치' 피한 정부, WTO 제소에서도 유리
'일방적 대응조치' 피한 정부, WTO 제소에서도 유리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9.08.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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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출입고시 개정안'에 구체적 규제 품목 없어
일본의 추가적인 수출규제 조치에 유연하게 대응 가능

'WTO 제소' 카드 남겨둔 상태…양자협의 요청서 제출시기 주목



정부는 일본을 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면서 앞서 일본이 단행한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조치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있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인 '톤 다운'이라고 본다.



13일 정부가 전일 발표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보면 수출규제 품목이나 방안이 자세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반대로 일본은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을 위한 핵심소재를 수출 규제 대상으로 명확히 지정해뒀다. 수출 허가를 위한 심사에도 일본은 최대 90일이 걸린다. 우리 정부의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에는 개별수출허가 심사기간이 15일로 나와있다.



이번 개정안이 WTO 협정에서 금지하는 일방적 대응조치에 해당한다고 보기 이르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매년 1회 이상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고쳐왔다고 주장한다. 이번 개정도 통상적인 절차에 따른 것으로 최근 일본과의 경제갈등 국면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일본보다 약한 수준의 수출규제로는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이런 우려도 아직은 시기상조로 보인다. 해당 개정안은 통상적인 고시개정 절차에 따라 20일간의 의견수렴과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9월 중 시행될 예정이다.



국내 기업과 개인들의 의견을 종합한 이후에 구체적인 수출규제 품목 지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만약 양국 간 협상이 진행되면 정부는 이를 지렛대로 활용해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절회를 요구할 수도 있다.



협상 여지도 열어뒀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전일 "의견수렴 기간에 일본 정부가 협의를 요청하면 한국 정부는 언제, 어디서든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으로 일본이 추가적인 수출규제 조치를 취해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천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만약 일본이 개별허가제 전환을 확대한 이후에 고시를 변경하겠다고 나서면 WTO 협정에서 금지하는 상응조치로써의 성격을 부인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이 이번 수출입고시 개정을 근거로 WTO 제소에 나설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실제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외무성 부대신은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의 수출입고시 개정이) 일본의 수출관리조치 재검토에 대한 대항조치라면 WTO 위반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에 WTO 제소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일찌감치 세워뒀다. 현재 주무 부처인 산업부에서 준비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이 우리 정부의 제소에 맞제소로 대응하는 시나리오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런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 대응 수위 조절에 힘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통상 WTO 제소 절차는 양자협의 요청서를 제시한 시점부터 시작된다. 요청서는 제소장 역할을 하는 만큼 충분한 검토를 거친 이후에 일본 정부에 보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소범위와 성격을 한번 규정하면 수정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백색국가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이 발효되는 시점 이후에 제소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일본은 오는 28일부터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 배제 조치를 시행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WTO 제소 시점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출규제 조치에 따른 구체적 피해 사례 등 증거 수집에만 몇 개월이 소요될 수는 있다.



양국이 양자협의에 착수한 이후에 제소국이 패널 설치 요청서를 내면 1심 격인 분쟁해결기구(DSB) 패널 판정 절차가 진행된다. 1심 판정이 나올 때까지는 대략 12개월이 걸린다. 1심 결과에 불복하면 WTO 상소기구로 사건이 올라간다. 여기서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통상 3~4년이 걸린다.



이 부연구위원은 "일본이 한국을 맞제소한다고 해도 이는 별개의 소송건"이라며 "우리가 제소한 소송에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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