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익과 조국
김재익과 조국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8.1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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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요즘도 관가에서 가끔 회자하는 `김재익'이라는 사람이 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이 삼고초려 끝에 국보위에 영입했다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기용했던 인물이다. 경기고 2학년 때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에 합격했다.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땄는 데, 거기서도 천재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서울대 강사를 하다가 한국은행 공채에 수석 합격했고, 기획재정부에 들어가서 42살에 차관보까지 올랐다. 신군부 세력이 집권가도를 달리던 1980년 사표를 내고 연구직을 모색하다 전두환에게서 프러포즈를 받았다.

그는 두 가지를 약속받고 정권에 합류했다. 하나는 소신껏 일하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치자금에는 관여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전두환은 “경제에서만큼은 당신이 대통령”이라며 그에게 경제정책에 대한 전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서울대 동문들로부터는 군부정권의 하수인이 됐다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는 아들로부터도 항의를 받았다. 그는 “경제가 국제적으로 성장해야 독재정치도 막을 수 있다”는 소신으로 자신을 방어했다고 한다.

지금 또 한 명의 서울대 출신 천재가 모교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법무장관에 내정된 조국 후보자다. 그는 16살에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으며, 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를 받고 26살에 울산대 교수에 임용됐다. 당시까지 최연소 합격, 최연소 임용 기록이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는 학교 안팎에서 진보적 지성의 상징으로 대접받았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 교직원들만 참여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부끄러운 동문 1위에 뽑혔다. 청와대 민정수석을 마치고 교수로 복직한 직후였다. 2년 4개월 만에, 그것도 법무장관을 예약해놓고 교수로 돌아온 그를 폴리페서(정치 지향적 교수)의 전형으로 비판한 것이다. 지난 2017년 대선 때 당시 문재인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서 이 커뮤니티가 부끄러운 동문 1등으로 뽑은 우병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적폐로 언급했던 그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됐다.

김재익은 1983년 전두환의 미얀마(버마) 방문을 수행했다가 북한이 저지른 아웅산 테러로 생을 마쳤다. 그는 두 가지를 인정받는다. 재벌과 밥을 먹어도 밥값은 꼭 자신이 낼 정도로 청렴했고, 지인들로부터 수백 통의 이력서를 받은 노모가 아들의 성품을 알기에 한 통도 건네지 못했을 정도로 강직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정권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소신껏 정책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저물가 기조를 철저히 유지해 서민경제에 울타리를 쳐줬고, OECD(국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성사시켜 국격을 높였다. 그가 주도한 전자식 전화기와 은행 지로제 도입 등은 한국이 정보화 강국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종국에는 실패로 끝났지만, 정치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긴다며 결사반대한 당시 권력 실세들과 충돌하면서까지 금융실명제를 밀어붙인 사례는 유명하다.

조국 후보자는 민정수석실을 떠나며 “촛불혁명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법과 원칙에 따라 직진했고 소기의 성과도 거뒀다”고 했다. 나름 자찬의 근거가 있겠지만, 많은 국민은 무려 16명에 달하는 장관급 인사가 국회 청문보고서 없이 강행된 청와대의 역대급 인사난맥을 그에게서 떠올린다. 그의 존재감이 야당과의 협치가 뽀개지는 지점에서만 도드라졌다는 평가도 이의를 달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청와대는 그가 검찰개혁의 적임자라고 하지만 민정수석이 법무장관으로 직행하는 초유의 인사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전례 없는 난타전이 벌어질 것이다. 청문회에서 살벌한 군부정권에서 실세들과 각을 세워가며 소신을 펼친 대선배를 본받겠다는 결기를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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