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양이 이야기(3)
미양이 이야기(3)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9.08.1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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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미양이의 일방적인 숨바꼭질에 지쳐갈 즈음의 어느 날, 큰딸이 두 손을 모아 쥐고 와서 소중한 무엇인가를 전해주듯 내 손을 감싸 안고 어루만지며 비볐다. 상기된 얼굴로 속삭이듯 미양이 냄새라고 했다.

“미양이가 나왔어?”

딸이 기쁘게 모험담을 말했다. 미양이가 있는 방에 가장 낮은 자세로 천천히 기어서 들어가 방 가운데 앉아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한참 만에 미양이가 나오고 또 가까이 오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미양이가 나왔고, 가까이 다가왔고 손가락에 관심을 가졌다. 그때 손을 내밀거나 움직이면 안 된다.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한다. 한참 손을 가지고 놀게 두었다가 볼이나 턱 아래 분비샘이 있는 곳을 살며시 만져주었다는 것이다. 처음 얻은 미양이의 냄새를 내게 묻혀주며 다가가려 하지 말고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고 알려준다. 바로 그거구나.

나도 몇 번 시도해봤다. 미양이는 경계를 쉽게 늦추지 않았지만 가까이 다가와 내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뚫어지게 보다가 앞발로 건드리기도 하고, 그러다 이내 정신이 번뜩 들었는지 구석으로 가버리곤 했다. 내 작은 움직임에도 놀라서 도망가 버렸지만, 곧 다시 다가왔다. 시간이 지나자 내 옆에서 편안히 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놀기도 했다. 미양이가 노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릴 때면 두 마리의 고양이들도 꼬리를 바짝 세우고 궁금한 듯 닫힌 문 앞을 서성였다.

방문을 열어두면 미양이는 구석에서 고개를 내밀어 바깥을 관찰하더니, 점차 문 앞까지 나왔고, 어느 날은 거실을 재빠르게 한 바퀴 돌고 놀란 듯이 제 방으로 뛰어 들어가기도 했다. 호기심과 용기가 두려움을 아주 조금씩 밀어내며 공간을 조금씩 확장하는 매일의 작은 사건들이 우리 가족의 중요한 화제였다. 단단하여 깨질 것 같지 않던 어둠과 막막함에 미세한 균열들이 생기고 부드러워지고 그 사이로 빛이 비어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양이와 다른 고양이가 싸우는 많은 순간도 같은 흐름이었다. 한 발 뒤로 가기도 하고 두 발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며 우리는 서서히, 어느새 더 많은 빛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양말이는 학교 뜰에서 겁도 없이 배를 하늘로 내어놓고 천하태평으로 누워 잔다. 마주칠 때마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동시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의 말을 속으로 되뇐다. 아파서 더욱더 애처롭게 마음에 두고 있었을 새끼 미양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을 때 얼마나 걱정되고 마음 아팠을까? 아직도 미양이의 냄새를 기억할까? 마음속 아픔을 저렇게 무심한 척 참아내고 있는 건 아닌지, 나라면 어땠을까? 나도 깊이 어미의 마음이 되어 본다.

결론적으로, 이제 미양이와 우리는 모두 서로 적응하여 잘 지내고 있다. 지금도 간혹 사건이 생기면 아물었던 상처는 다시 터져서 피가 나기도 한다. 다른 고양이들과 싸우거나, 뜻하지 않은 일로 놀라서 달리게 되는 경우, 높은 곳에 올라가 보려는 욕심이 났을 경우다. 그러나 평소에는 괜찮다. 미양이는 새끼 고양이 특유의 호기심과 장난기로 온 집안을 뛰어다니고 내게 제 몸을 비빈다.

미양이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새로운 큰 변화에 당황한 생명체들, 사람과 고양이 모두가 각자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뿜고 엉키어져 순식간에 어둠이 되었다. 그러나 각각의 생명체는 자기를 중심에 두면서도 주변과 어우러지려고 하는 의지가 본능인 것이 분명하다. 그 의지가 삶의 매 순간에 산란(散)하여 어둠이 옅어지고 빛이 채워졌다. 미양이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주변의 소소한 마음도 큰 힘을 보태었다.

밝음의 최상은 일상이다. 이제 별일 아닌 듯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지내는 하루하루를 갖는 `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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