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 햐~ 증말 대단 햐~
대단 햐~ 증말 대단 햐~
  • 엄남희 뜨렌비팜 대표
  • 승인 2019.08.0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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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담 시골살이

 

소녀 시절 친구들이 뜨렌비에 오겠단다. 1986년 여고졸업 후 평창의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청주로 나오면서 연락이 끊겼으니, 33년 만에 처음 만나는 것이다. 그 시절엔 우체국을 통한 편지밖에 개인적인 통신 수단이 없던 터라, 상대의 주소를 모르면 연락이 끊기고 말았는데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서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로 연통이 되었다.

폭염 경보인 요즘, 한낮의 기온이 34도를 오르내리고 도시는 그 열기가 밤까지 지속되어 쉽게 잠을 이루기 어려울 때가 많다. 오늘도 변함없이 태양으로부터 발사되는 뜨거움은, 그늘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삼복더위에 찾아오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데, 학창시절 친구는 예외인가 보다. 번거로움보다 여고 시절의 아련함과 함께 어떻게 변해 있을까에 대한 궁금함과 설렘이 더 크다. 친구를 맞으려면 주변을 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둘러봤는데,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지난번 내린 비로 풀들이 한껏 자라 있어 그야말로 호랑이가 새끼 칠까 두렵다. 풀 깎은 지 며칠 되었다고, 벌써 저렇게 자란 걸 보면 식물의 끈질긴 생명력에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왕고들빼기가 씨 뿌려 가꾼 것처럼 사방에 퍼져 있는데, 잘라서 찬하기 딱 좋을 만큼 깔끔하고 실하게 자랐다. 저걸 어쩌지?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 깎자!' 내친김에 예초기에 연료 붓고 시동을 걸고, 한나절 내내 풀만 깎았다. 티셔츠가 등줄기에 척! 들러붙고 이마에서 땀방울이 뺨으로, 콧등으로, 눈으로 줄줄줄 흘러내려 틈틈이 훔쳐내도 눈이 따갑다. 점심때가 지나자 연료 고갈로 시동이 꺼졌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시동 꺼진 김에 쉬기로 했다. 연료통 채워놓고 얼음물 한 대접 단숨에 들이키고, 대추나무 아래 털썩 앉았다. 바람 한 점 없는 짙푸른 하늘엔 흰 구름이 몽실하다. 누가 봐도 연약한 여인의 몸(믿거나 말거나)으로 얼굴이 벌게지도록 예초기 짊어지고 다녔더니 어깨끈 닿는 부분이 상당히 아프다. 아! 힘들다.

`다 때려 치고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

사무실에서 상사로부터 싫은 소리라도 듣는 날엔 누구나 한 번쯤 내뱉었을 말이다. 농사나 지을까? - 농사나! - 농사나라니, 그것이 얼마나 철모르는 소리인지 알고 하는 말일까? 시골에서의 삶은 `농사나'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가볍지 않다. 깎고 돌아서면 또 자라는 풀들은 그나마 취미로 깎는다 해도, 흔한 고추라도 한 자락 심는 날엔 이 뜨거운 태양 아래 허리 굽히고 매일 매일 따서 건조시켜야 하는 수고로움이 생각처럼 그렇게 말랑 말랑하지 않다. 작업에 따르는 체력 소모도 클뿐더러, 본토박이 주민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려면 멘탈도 강해야 한다.

찬물에 밥 한 수저 말아 떠먹고 다시 장갑을 꼈다. 윙윙! 끊임없는 소리는 그로부터 수 시간 더 지속한 후에 끝이 났다. 개운한 마음으로 예초기를 내려놓고 해거름에 멀끔해진 농장을 돌아보니, 은근 성취감 있다. 어느새 하늘은 붉게 물들고, 바람타고 날아오는 마른 풀 향기에 온

엄남희 뜨렌비팜 대표
엄남희 뜨렌비팜 대표

 

정신이 아득하다. 아! 좋다.

건너편 밭두렁에서 호박 덩굴 뒤적거리던 이웃집 할머니 다가오셔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신다.

“아니, 여자가 그른 글 다 햐? 쟁일 쉬두 않구 허네. 대단 햐. 내가 수숩년 밭일허구 어즈근한 거 다 해봤즈만 기계즐은 못하잖여. 대단 햐! 증말 대단 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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