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씨의 의자
곰씨의 의자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08.0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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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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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군가의 조언보다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치를 훨씬 잘 기억한다. 아마도 경험을 하는 동안 몸에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그럴 것이다. 여기 곰씨로 은유 된 어떤 이가 하고 싶은 말을 못 해서 급기야 똥까지 사는 자기파괴까지 경험한 이야기가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곰과 토끼는 처음 함께할 때 만해도 즐거웠다. 시와 음악이 있는 평화로운 시간을 좋아하는 곰은 지쳐서 지나가는 탐험가 토끼에게 자신의 의자 한켠을 내어준다. 함께 차를 마시고, 오가는 이야기는 곰씨를 유쾌하게 했다. 토끼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사랑하는 토끼를 만나 결혼한다. 그리고 곰씨가 있는 숲 속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곧 토끼 부부의 아이들이 태어난다.

토끼 부부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태어나고 또 태어난다. 곰씨는 점차 평화롭게 차를 즐기거나 음악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아기 토끼들은 곰씨의 의자에서 먹고 마시고 장난치고 곰씨와 뒹굴고 놀았다. 당황한 곰씨의 표정은 토끼 가족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토끼 부부는 친하고 가깝다는 이유로 함부로 의자를 더럽히거나 곰씨의 의견은 묻지 않고 그의 의자를 즐기고 누린다. 토끼들은 매일 곰씨를 찾아왔고, 모두 즐거워 보였다. 그러나 친절한 곰씨는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불편하기만 하다. 아무리 생각을 열심히 해도 막상 토끼들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혀가 꼬이고 머리가 엉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우리는 곰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 그러나 눈치 없고 한계선이 분명하지 않은 토끼들은 곰씨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 보인다. 이쯤 되면 그림책을 읽는 나도 토끼들이 미워진다.

친하다는 것,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얼만큼의 거리가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할 즘, 곰씨는 의자를 혼자서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실천에 옮긴다. 가령, 아무도 앉지 못하게 길게 누워 있다던가, 곰씨의 한 자리만 남겨두고 의자에 페인트를 칠한다든가, 한번은 무거운 바위를 의자 위에 올려놓으려다가 그만 바위를 놓쳐서 발등을 찍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의자를 하나 더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방법도 토끼들의 간섭과 방해는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곰씨는 마지막 방법으로 의자에 똥을 싸버린다. “아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어”라는 말과 함께. 그때 마침, 비가 내린다. ”말도 안 돼! 날보고 더 이상 어쩌란 말이야.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난 세상에 다시 없는 친절한 곰이라고!!“ 이것은 곰씨가 비를 맞으며 절규하는 소리다.

친절한 곰씨는 어떻게 되었을까, 토끼들의 반성과 성찰은 있었을까, 곰씨 자신조차 몰랐던 자기의 모습을 보곤 놀라지 않았을까. 관계가 좋을 땐 사실 아무것도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가 되다 보면 본인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피로감을 줄 수밖에 없다. 그림책의 속지가 처음과 끝이 다르다는 것을 유심히 관찰한 사람은 알 수 있다. 첫 장의 속지는 곰씨의 숲 속 의자와 태양이 구석에 있었지만, 이야기가 끝난 뒤의 속지에는 곰씨의 의자와 태양이 숲 속의 중간에 있다. 이것으로 보아선 곰씨는 드디어 자신만의 방법을 찾은 모양이다. 당신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관계의 거리를 잘 조율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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