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에서
링 위에서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0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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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장기전으로 이어질 링 위에서 어떤 작전을 써야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까? 써야 할 카드가 동이 나면 게임은 지는 거다. 수출규제, 경제보복, 백색국가 제외,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에 던진 카드, 앞으로 일본이 한국에 쓸 카드가 무엇이며 몇 장 남아있을까? 투쟁과 전쟁은 쌍방의 상처만 남는다는 것을 아베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왜 무모한 일을 했을까?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이웃인 나라에 쉽게 카드를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던져진 카드 앞에 두 나라의 미래가 자못 궁금하다. 신뢰가 깨어지면 개인이든 국가든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회복하기가 어렵다.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냉정히 대처하는 편이 이긴다. 상대가 강하게 나온다고 맞장 뜰 필요는 없다. 차분히 원인을 분석해 기다렸다가 역공세를 펼칠 수 있도록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바닥을 치면 두려울 게 없다. 우리는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인격과 지도자가 가져야 책임감, 인류를 위한 생명애를 깊이 새겨야 한다. 자유와 평화, 인권을 유린당한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은 얼마나 독립된 자유를 갈망했던가? 육사의 평전을 보면서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의열단에 불현듯 가입하고 싶은 생각은 뭘까?

얼마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블랙리스트, 화이트 리스트니 하며 색깔론을 거론하더니 이젠 국외에서까지 색깔론을 들고 나서다니. 위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아래에서는 일본이 저 멀리에는 미국이, 여기에다가 북한까지 무방비 상태인 바다에 미사일인지 대포인지 빵빵 쏴대고 있으니, 무엇을 향해 이 강산을 지키고 노래해야 하나? 예나 지금이나 사방이 적이다. 링 위에 어떤 대상을 먼저 맞이해야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 언제부터 우리가 백색국가였던가? 우리는 남의 눈치 보지 않는 우리만의 황색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이제 와서 민족이니 조상이니 거론하기보다는 내가 사는 이 영토와 지역, 이웃을 위해 힘을 길러야 할 때다. 대충, 얼렁뚱땅, 눈치껏, 재치있는 한국인과 달리 일본인은 아주 답답할 정도로 매사에 치밀하고 꼼꼼하다. 해서 그들은 무엇을 하든 섣불리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들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움직일 수 있는 인간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진실은 통하고 신뢰와 신용은 영원하다. 다시 그 어느 날 미야자키로 가 본다.

일본은 외국인들을 잘 활용해 일본인들에게 외국 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 일 년에 한두 번 외국인들을 각 학교나 큰 행사에 초청해 전통 복을 입고 자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진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외국의 문화가 낯설지 않게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하는 산교육이다. 당시 나도 한복을 입고 유명인사가 된 양 착각할 정도로 여기저기 불려 다녔다. 강단에 서서 한복을 입고 한국문화를 소개하는가 하면 미야자키현을 소개하는 국제 포스터에 모델이 되기도 했다.

워낙 외국인들과는 거침없는 형이라 그들과도 아주 친하게 잘 지냈다. 절대로 속내를 보이지 않는 일본인들도 나와 함께 있으면 소탈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사회적으로 학습 된 문화와 인성은 쉽게 버리지 못하지만, 환경과 대상에 따라서는 달리한다. 하루도 심심할 틈이 없이 일본인 속에서 살았다. 일본인들의 특징상 한국인들과 달리 본인 집에 손님을 잘 부르지 않는다. 지금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 일본 문화가 그랬다. 오지랖 넓게 나는 많은 사람과 교류하면서 엄마, 아버지, 언니, 오빠들을 이 동네 저 동네 맺어 놓고 가족처럼 지냈다.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집에 있는 날에는 일본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조그마한 것에도 감동하는 그들이 놀러 오면 즉석 비빔밥과 부침개를 대접했다. 내가 집에 없는 날에는 누군가 문 앞에 과일이나 채소를 편지와 함께 걸어놓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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