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자
일기를 쓰자
  •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19.08.0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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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나는 원불교 교무이면서 문예창작학 공부를 하였다. 문학을 창작하는데, 글을 쓰는데 무슨 공부가 필요하냐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지곤 했다. 물음은 꼬리를 물고 또 다른 물음을 만들어냈고, 결국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가?'라는 물음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라면 80년은 거뜬히 살아내고 있다.

80살이 된 나를 상상해 본다. 곧 죽음을 앞둔 노인이 된 나를 상상하는 것이다. 나는 지나간 인생을 추억해 볼 것이다. 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기억나는 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만한 몇 가지의 일들뿐일 것이다. 많아야 대여섯 가지가 기억날 것이고 적으면 서너 가지가 기억날 것이다. 내 인생에서 빛이 났던 순간이 대여섯 장면밖에 되지 않을까? 1년은 365일이고, 80년은 29,200일이다. 그 많은 날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우리는 대부분 평범한 하루를 보내며 산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잠을 잔다. 이렇게 써 놓으니 별것이 없는 것 같지만 그 하루 24시간이 인간의 삶이다. 하루가 더해져 1년이 되고 1년이 더해져 평생이 되니 말이다. 하루 24시간 동안 변화되는 감정 역시 희(喜), 노(怒), 애(哀), 락(樂) 모두 들어 있다. 우리는 매일 기뻐하고 슬퍼하며, 화내고 즐거워하며 살고 있다. 특별한 희로애락이 느껴지지 않는 날도 있다. 무료한 날일 수도 있고, 평온한 날일 수도 있다.

사는 게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변화무쌍한 하루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은 성냄과 슬픔의 감정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혹은 평온한 날들을 지루하고 무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80살이 되었을 때, 대여섯 가지의 일들만 나에게 의미 있는 날들로 느끼는 것이 싫다. 나는 아주 많은 날이 나에게 의미가 있었고, 나를 성장시켜준 소중한 날들로 기억하고 싶다.

문학은 그런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을,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일상을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옮겨 적어 빛이 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소비했던 하루를 글로 옮겨 적을 때, 그 하루는 빛이 나고 의미가 생기며 우리를 성장하게 만들어 준다.

원불교 경전에는 `일기법'이 있다. 원불교 공부인들이 꼭 해야 하는 공부법으로 `일기'가 들어 있는 것이다. 어느 종교의 어떤 성자도 경전에 일기를 쓰라고 한 적이 없다.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님만이 유일하게 일기를 쓰라고 했다. 나는 그 자비로움에 한없는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문학을 공부하고 원불교를 공부하기 전까지는 `일기'를 유치하고 하찮게 생각했다. 하지만 `일기'는 `하루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내 마음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해 주고, 마주하고 대하는 것들에 대한 `소소한 깨달음'을 안겨주고, 내 인생의 모든 날들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더없이 훌륭한 수행법이자 공부법이었다.

글은 말이나 기억과는 다르다. 글로 써지는 순간 의미가 생기고 기록으로 남는다. 일기를 쓰자. 곧 어제가 될 오늘에 생명을 불어 넣어 주자. 우리의 삶이, 우리의 하루가 빛이 나고,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우리의 인격이 성장할 것이다.

나는 오늘 밤도 잊지 않고 나에게 재촉을 한다.

일기를 쓰자. 마음일기를 쓰자. 마음공부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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