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다
이게 나라다
  • 석재동 기자
  • 승인 2019.08.07 2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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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석재동 부장
석재동 부장

 

“이게 나라냐.”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봄까지 이어진 촛불혁명을 대표하는 구호 중 하나다. 새 시대를 열망하는 물음이기도 했다.

촛불혁명은 표면적으로 최순실이라는 민간인이 국정을 농단했고, 국민들이 그 죄를 물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다.

실체적으론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드러나기전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불거진 수많은 국민적 관심사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어물쩍하게 넘어간 사례들이 쌓이고 쌓여 일시에 폭발한 발화점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참사다.

국가적인 재난상황을 맞은 그날 국가는 국가답지 못했고, 대통령은 대통령답지 못했고, 대한민국의 재난구호시스템은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2014년 9월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55일째 단식농성을 하던 유가족들 앞에서 피자·치킨을 먹으며 폭식투쟁을 진행한 극우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의 반인륜적 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일베와 같은 극우인사 또는 단체의 반인륜적 행동이나 발언을 사실상 방조할 뿐 적극적으로 나서 처벌하거나 말리려 하지 않았다.

그랬던 대한민국에서 실종된 한 중학생이 공권력과 시민들의 최선을 다한 노력으로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기적이 일어났다.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내암리에서 조은누리양(14)이 실종된 지난달 23일부터 구조된 이달 2일까지 민·관·군·경은 혼연일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행동으로 보여줬다.

청주시는 조양 실종 다음날인 24일 수해, 폭설 등 재난상황에서나 발송하는 재난문자메시지를 시민들에게 보냈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해도 사나흘은 지나야 수사에 나선다는 시민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신속한 대응이었다. 조양이 지적장애 2급으로 사리판단이 부족할 수 있다는 판단이 더해진 행위였겠지만, 어찌됐든 파격 그 자체였다.

수색에 투입된 민·관·군·경 연인원은 5790명에 달했다.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장맛비와 싸우면서도 이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수색범위를 넓혀나갔다.

성과가 나오지 않는 날이 반복될수록 생존가능성 앞에 기적이라는 용어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색에 나선 이들은 희망과 기적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선물이라는 믿음을 잊지 않았다. 특히 지방정부와 군·경찰은 존재 이유를 분명히 보여줬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게 자신들의 첫 번째 임무라는 것을 말이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행위 자체가 공권력에 대한 믿음의 원천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맹렬한 수색활동을 벌였고, 최상의 결과를 얻어냈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삼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와 같은 사건이 다시 벌어졌을 때 더 나은 대응을 하기 위한 목표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양 구조에 충북도민이 하나가 됐다는 건 향후 언제 어디선가 도민 누군가에게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졌을 때 충북사회는 그와 그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사회적 약속이 더욱 견고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들은 정부나 지방정부, 사회에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결과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내가 사는 국가와 사회는 항상 나와 가족의 안녕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믿음 그 단 하나를 믿고 오늘을 산다. 구성원에게 닥친 불행을 해소하기 위해 공권력이 먼저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사회, 이게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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