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서원과 남겨진 우리의 사명
화양서원과 남겨진 우리의 사명
  •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19.08.0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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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충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말복이 코 앞이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누구라도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바다가 없는 충북에선 시원한 곳 하면 자연스레 계곡이 떠오른다. 속리산과 월악산 같은 명산을 품고 있어 시원한 물줄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계곡들이 참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꼽는다면 괴산의 화양계곡이 아닐까 싶다.

괴산군 청천면에 자리 잡은 화양계곡, 또 다른 이름은 `화양구곡'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계곡마다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에 9개의 이름을 붙이고 그곳을 “○○구곡”이라 불렀다. 이 구곡문화는 본래 중국 송나라 때부터 유행한 것인데,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가 이를 본받아 황해 해주에 `고산구곡'을 지정하면서 조선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충북지역도 구곡문화가 크게 유행해, 화양구곡 외에도 대략 70여 개의 구곡이 있었다고 한다.

화양구곡은 산수가 빼어나기로 손꼽는 곳이다. 하지만, 그 명성은 단순히 경치 때문만은 아니다. 조선의 대학자 우암 송시열 선생의 정신이 깃든 화양서원이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암 송시열, 그는 인조, 효종, 현종, 숙종까지 장장 4명의 임금을 모신 17세기 으뜸가는 학자이자 정치가였다. 밖으로는 병자호란 때 겪었던 민족의 수치를 극복하고자 효종과 함께 북벌정책을 주도했던 정치가였고, 안으로는 조선 유학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기호학파의 학맥을 형성한 대 유학자이기도 했다. 숙종이 희빈 장씨의 아들 이윤을 세자로 책봉하려 할 때 송시열은 극렬 반대하다 결국 사사되었지만, 그를 존경했던 선비들과 제자들에 의해 6년 뒤 명예를 되찾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학문과 정신을 계승하는 학교가 세워졌으니, 바로 화양서원이다.

이후 화양서원은 기호학파의 중심지로 전국의 서원 중 가장 이름있고 위세가 높은 서원으로 그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19세기에 이르러서는 그 위세를 악용해 지역 주민을 수탈하는 권력집단으로 변질되었고, 결국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모든 건물이 헐리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지금도 화양구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화양서원을 만날 수 있다. 건물들은 2002년 새로 복원된 것이지, 본래의 건물이 아니다. 올해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많은 이들이 화양서원이 포함되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물론 화양서원이 가진 역사적 가치를 따진다면 마땅히 “한국의 서원” 중 하나가 되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1870년 대원군에 의해 철폐되면서 화양서원이 가진 진정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정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유적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그리고 완전성과 진정성이다. 그래서 한국의 수많은 서원 중 세계유산 신청 대상을 선정할 때 `역사발전 과정에서 훼철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한 서원'을 대상으로 하였고, 그 결과 9개의 서원이 선정된 것이다.

역사의 아픈 흔적으로 화양서원은 세계유산의 대열에 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양서원이 가진 가치가 줄어든 것은 결코 아니다. 화양구곡은 조선 선비부터 오늘 우리까지 세월을 거슬러 사랑받는 경승지이며, 그 경승지를 들르는 모든 이들은 멋진 풍경 속에서 송시열 선생이 지키고자 했던 우국충절의 마음을 만나게 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가 남겼던 학문과 정신, 그가 사랑했던 풍광, 그가 남긴 유산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잘 보존하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역사적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많은 이들과 공유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지자체와 지역민들의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다행히 화양서원은 지역의 뜻있는 분들이 힘을 합쳐 2011년부터 문화유산 활용사업을 시행하며 문화유산의 가치를 전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역민들의 관심과 노력에 부합할 수 있도록 지자체의 지원과 적극적인 학술연구 및 보존·활용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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