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아저씨
펑 아저씨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19.08.0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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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개교기념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았다. 엄마는 집을 봐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얌전히 집을 지키고 있었다. 다른 동네에서 친구가 찾아왔다. 우리 동네 저 너머 사는 친구와 함께 놀러 온 그 친구는 놀이터에 가자고 했다. 순간 고민을 하고 엄마의 말을 어기고 나는 친구들과 놀러 나와 버렸다.

놀이터에 놀러 와서도 겁이 많은 나는 그네도 힘차게 타지 못했다. 그넷줄을 잡고 서 있었다. 그네를 서서 타는 것조차 나에겐 새로운 도전이었다. 친구가 도와준다며 나를 밀어줬다. 나는 하지 말라며 친구를 말렸지만 그네가 얼마나 재미있는 놀이인지 알려주고 싶었던 친구는 나를 힘차게 밀었다. 결국 나는 그네에서 떨어졌고 발판에 머리를 맞아 피가 나기 시작했다. 화장지로 머리의 상처를 대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집으로 갔다.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놀이터로 놀러 가는 선택을 한 내 최후는 머리의 상처로 남았다.

그 이후로도 나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놀러 나가면 꼭 상처를 입고 돌아왔다. 손톱이 빠지거나 무릎이 까지고 신발을 잃어버렸다. 그런 경험 덕분에 나는 참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로 성장해 나갔다. 그냥 조심히 놀았으면 됐을 그런 사고였을 뿐인데 말이다.

그림책 `펑 아저씨'(김미소진 글, 그림, 계수나무, 2019)는 `선택'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주는 책이다.

무엇이든 못 만드는 것이 없는 펑 아저씨에게 가장 큰 고민은 선택을 하는 것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점심에 파스타를 먹을지 피자를 먹을지도 결정을 못 하는 선택장애다. 발명왕답게 선택을 도와줄 당근 할아버지를 발명한 펑 아저씨는 자신의 모든 선택을 당근 할아버지에게 맡겨버린다. 당근 할아버지는 점점 선택이 필요한 순간 이외에도 나서기 시작했고 펑 아저씨는 점점 당근 할아버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당근이 되어가는 자신을 본 펑 아저씨는 당근 할아버지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보내고 여전히 어렵지만 본인 의지로 선택하겠다는 결심을 한다는 내용으로 책은 구성되었다.

당근 옷을 입은 펑 아저씨가 웃겨서 한 번, 당근 할아버지의 귀여운 모습에 한 번 크게 웃음을 주는 재미에 계속 읽는다. 읽다 보니 기분이 씁쓸해진다.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던 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엄마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났다. 머리가 굵어지고 점점 내 생각이 많아지면서 엄마의 뜻을 저버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했지만 마음은 불편했었다. 우리 엄마는 당근 할아버지였을까?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어떨까? 아이들의 선택과 생각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또 다른 당근 할아버지가 아닐까? 무한한 능력과 생각을 가진 두 명의 펑 아저씨를 나는 나와 똑같은 당근 할아버지로 만드는 중은 아닐까?

선택을 한다는 것은 본인의 의지를 같고 본인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일이다. 나는 내 색깔을 잘 칠하며 지내 왔는지 지금은 어떤 색깔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아직 투명한 상태로 색깔을 가지지 못한 내 아이에게 나는 어떤 색깔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본다. 당근 할아버지는 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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