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향기
초록의 향기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9.08.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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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한여름인데 온몸엔 매운바람이 인다. 살 속의 파고드는 찬기는 요통과 위염으로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문다. 통증이 시작되면 그야말로 생살을 도려내는 아픔이다. 겉만 멀쩡하지 속은 텅 빈 대나무처럼 아무것도 없는 듯하다.

체질개선을 위해 한적한 시골 텃밭에 유기농 재배로 자급자족하시는 지인을 찾았다. 텃밭엔 그야말로 볼품없는 각종 채소가 줄줄이 심어져 있었다. 짚을 깔아 잡초와 수분증발을 방지했고, 짚과 우분의 발효된 거름으로 밭고랑엔 궤궤한 냄새가 진동한다.

채소이파리를 들어 올리면 벌레구멍사이로 햇볕이 쏟아지고 뻣뻣해 먹음직스럽지는 않다. 우선 먹기에 곶감이 달다고 벌레 구멍이 숭숭한 야채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이랑에 앉아보니 이곳은 거꾸로 가는 마차를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다.

예전 기억을 되짚어보면 텃밭엔 상추, 열무 등 야채가 지천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텃밭 채소로 밥을 먹었는데 목이 아프고 싸하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잔기침이 일기 시작했다.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증세는 심해졌다. 체한 줄 알고 어른들은 손을 따고 생즙 낸 아린 무즙을 먹이고 난리가 났다. 올칵올칵 게워내며 설사를 하고 하룻밤을 지내고 나서야 겨우 회복이 되었다. 훗날 그것이 채달이란 걸 알았다. 당시 인분 거름을 주었는데 미쳐 그 독성이 빠지기 전에 야채를 먹었던 것이다. 유기농도 좋지만 어릴 적 채달에 걸려 생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유기농야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몸이 아프다 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인을 찾은 것이다.

처마 끝마다 생 쑥을 매달아 놓았다. 생 쑥을 태워 모깃불 하듯이 그 연기로 병충해 방지는 물론 예방을 하신단다. 마당 언저리 생 쑥을 태워 누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 밭 뚝 에 걸터앉은 지인은 영락없는 도인모습이다.“아는가? 주부들이 열무가 싸면 신문지에 돌돌 말아가고, 비싸면 장바구니 맨 위에 올려놓고 간다지. 제발 그리 약게 살지 마쇼, 농사란 삶의 근본이지 뿌린 대로 거두는 거여 인생도 똑같여, 흙은 생명이여 흙이 죽으면 우리도 죽제”비록 텃밭에 판매용이 아닌 식구들의 먹거리 농사를 짓고 있지만 자연드림에 철학이 있으셨다. 솥뚜껑처럼 크고 굳은살 박힌 투박한 지인의 손을 본 순간 걸어온 길이 얼마나 우직했을까. 그의 손은 흙이고 생명이었다.

위에 좋다는 녹황색채소를 장바구니 가득 담아 밭고랑을 빠져나오는 순간 궤궤한 냄새가 그리 익숙할 줄이야. 내 비록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자연식을 찾았지만, 원초적인 방법이 건강이란 걸 찾았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소비자는 정갈하고 연한 채소 색깔도 곱고 크기도 일정한 맛깔스런 상품을 원한다. 농부도 맞춤농사를 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기 위해 비료와 농약을 끝없이 살포하고, 흙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유해물질로 토양오염이 날로 심화 돼 중금속으로 흙도 인류도 병들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악순환은 멈추질 않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유기농상품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살만한 세상이 아니던가.

거칠고 단단한 굳은살 아래에 따뜻한 사랑과 온기 그리고 생명과 자연을 돌려주는 농부의 손도 지인의 손도 하나였다. 세월을 거꾸로 가는 마차를 타고 달리는 지인의 이런저런 유기농산물을 싣고 집으로 오는 내내 이 설렘은 뭘까? 대소쿠리 가득한 못생긴 쌈 채소, 내 몸에는 달달한 초록의 향기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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