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韓, 반半, 도島
한韓, 반半, 도島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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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돌발적인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해 잊혔던 애국이란 단어가 깃발을 든다. 흩어졌다 하나 되게 하는 마력, 과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한겨레의 역사가 우리 몸에서 자기장처럼 움직인다. 움직이는 파장을 잘 이용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지금이야말로 진면목을 보여줘야 할 때다. 국내외 정세 모두 일방이 아닌 쌍방이 상생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韓半島가 주는 한자의 의미를 되새기며 바람 잘 날 없는 우리의 역사를 해박한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잘 풀어나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베가 한국에 대해 촉각을 세우는 것은 남고손(南鄕村)의 후예라서가 아닐까?

한일관계로 석연치 않은 요즘, 한국·북한·일본이 내게 하나로 보이는 것은 뭘까? 미야자키시에서 생활하는 동안 일본인과 여행을 하면서 낯섦보다는 멈칫거림이었다. 속속히 일본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일본인이 우리 민족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생각은 진행형이다. 당시 어줍은 요리 강사로 한국문화 전도사로 활약한 것이 계기가 되어 많은 현지인과 교류하면서 느낀 바이다. 어떤 이는 내게 다가와 “자기 조상이 한국인일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이다”가 아니라, “일지도 모른다”라는 말 속에 무한의 의미가 담겨있다.

일본 미야자키현 남고손(南鄕村)에 구다라노 사토(百濟의 里)가 있다. 다시말해 백제의 마을이다. 이곳 남고손 사람들은 매년 정월에 백제 왕족을 모신 미타도 신사(神門神社)에서 제사를 지낸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660년대, 나당 연합군에 패한 백제의 정가왕(禎嘉王)이 왕족과 궁녀를 데리고 도착한 곳이 미야자키현 가구치(蚊口)해변이다. 아들 복지왕(福智王)은 가구치해변가 기조초(木城町)에 머물고, 아버지 정가왕은 90km 떨어진 남고손에 터를 잡았다. 남고손에서는 매년 백제왕 부자의 넋을 기리는 시와스마츠리(師走祭り)가 1,300여 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시와스마츠리는 미카도신사(神門神社)에 있는 아버지 정가왕의 신神을 만나러 히키신사(比木神社)에서 아들 복지왕이 방문하는 행사이다. 정가왕의 신위와 그의 아들 복지왕의 신위를 모시는 `영신제'성격을 띤다. 행사는 2박 3일에 걸쳐 진행되며 백제의 풍습이나 계율을 전승하기 위한 의미에서 주방용품을 흔들며 90km를 순회한다. 기조초 사람들이 떠날 때, 남고손 사람들은 냄비나 바가지 등 부엌용품을 두들기거나 흔들며 “오 살아봐”를 외쳤다. `오사라바'는 오늘날 일본어로 안녕이란 뜻을 가진 `사요나라(さようなら)로 정착되었다는 어원이 있다. 내가 있을 때만 해도 일본어로 “다이엔 쯔카레마스(だいえん 疲れます”)가 있는데도 나이 드신 분들은 “대개 힘들었다(대개 힘드렀다)”라는 말을 썼다. 난 이곳에서 일본인들이 백제인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흔히 한반도에는 두 개의 국가와 두 개의 이념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한반도와 일본이 영토적으로 갈등을 겪지 않았을까? 백제가 패망한 지 1,300여 년이 지난 지금, 같은 영토에서 동족으로 살아온 우리도 이념적 갈등으로 분쟁을 겪고 있는데, 한반도에서 쫓겨난 백제 자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임진왜란을 비롯해 번번이 한국에 패배의 쓴맛을 봤으면서도 세계를 일본화하려고 시도한 힘을 보면 대단하긴 대단한 민족이다. 이렇게 소설 같은 이야기를 추론하니 한일간의 과거사가 거시적으로 보인다. 바람 잘 날 없는 韓半島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韓이란 나라에 半과 島라. 여기서 말하는 섬은 수많은 섬이 아니라 국가를 의미할지 모른다. 지리적으로 명료한 이름이다. 이름대로 살아가고 있는 한겨레가 아닌지 모르겠다. 알고 보면 얽히지 않은 인연이 어디 있으랴. 백골이 진토된 선조들을 찾아가 물으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현실에서 답을 찾아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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