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엄격하면 부드러워진다
스스로에게 엄격하면 부드러워진다
  •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7.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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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숲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솔직하게 사는 것이 좋다. 타인도 속이지 않고 자신도 속이지 않고 사는 것이 좋다. 솔직한 건 쉽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솔직한 것도 쉽지 않지만 자신에게 솔직한 것은 더욱 어렵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것이 어려운 것은 스스로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논리를 수십 가지 만들어낸다. 담배를 끊어본 사람은 알지만 사람은 담배를 피워도 되는 이유를 귀신같이 만들어낸다. 글을 쓰는 데 정신집중이 필요해서, 커피에 담배를 곁들이지 않는 건 낭만이 부족해서, 식사 후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일찍 죽으니까 등등. 갖은 이유를 대다가 도저히 안 되면 꼭 지금 끊어야 하는 건 아니지, 새해부터 끊지, 한 달만 더 피고 끊지 하면서 끊는 순간을 지연시킨다. 결국 끊어야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피워대며 중독자가 된다.

중독이 되면 자기 삶을 자기가 통제할 수 없다. 니코틴 중독자는 니코틴에, 도박 중독자는 도박에, 알코올 중독자는 알코올에 통제당하고 산다. 자기 삶은? 포기한 지 오래다. 중독자의 삶이 어떤지를 자신도 뻔히 알면서 미래를 내팽개치고 스스로 자신의 삶에 눈감으며 산다.

자신에게 솔직하다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담배가 자신에게 좋다고 설득하는 건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나는 담배가 자신에게 좋지 않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자신은 이미 속고 있는 것이다.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면 피워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낸다. 곧 자기를 속이는 논리로 스스로를 설득하게 된다. 자신에게 솔직하면 담배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고 자연히 담배를 안 피우게 된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다는 걸 안다. 상대가 잘못을 하고 있기 때문에 화가 난다고 하는 말은 스스로를 속이는 말이다. 그놈 때문에 화가 난 거라면 나는 그 사람에게만 화를 내야 한다. 원래 나쁜 놈이기 때문에 그놈에게 화를 내는 건 정당하다고? 그렇지만 나는 그놈에게만 화를 내지 않는다. 집사람에게도 화를 내고 아들, 딸들에게도 화를 낸다. 그놈이 나빠서 화를 낸다고 말하는 건 화를 내는 걸 정당화하기 위한 말이다. 자기가 이유 없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사실 화가 나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다. 내 안에 화를 낼 잠재적인 기질이 있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다. 나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지 다른 사람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담배에 대한 욕구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화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정서이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자기 책임이고 화를 내는 것도 자기 책임이다.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건 나도 알고, 삼척동자도 알고, 화를 내고 있는 사람도 안다. 따라서 화를 내는 것 자체가 문제이며 화를 냈다면, 백해무익한 담배를 피우고 싶은 것이 스스로를 속인 결과인 것처럼 이미 자신은 속고 있는 것이다. 담배를 습관적으로 피워 무는 것이 중독이라면 화를 계속 내는 것도 중독이다. 중독은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수 없게 한다. 화를 내고 싶어서 내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벌써 화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해악은 스스로에게 솔직하면 사라진다. 자기기만의 논리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단순해진다. 속이는 내가 나타나면 속는 나도 생기게 되어 있다. 곧 자기와 자기가 싸우는 구도가 형성된다. 복잡해진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 화를 내지 않는 나만 있으면 나와 내가 싸울 필요가 없으며, 그에 따라서 아주 단순하게 살 수 있다.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스스로에게 솔직하면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지 않게 되고, 화를 낼 일도 없다. 그래서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 대체적으로 부드러운 편이다. 나? 나는 나에게 안 속으려고 발버둥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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