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공감
진정한 공감
  • 류택현 청주시 흥덕구 민원지적과 주무관
  • 승인 2019.07.31 2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린광장
류택현 청주시 흥덕구 민원지적과 주무관
류택현 청주시 흥덕구 민원지적과 주무관

 

“감사합니다. 흥덕구청 민원지적과 류택현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응대 멘트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화부터 내는 민원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구구절절 본인의 억울한 사연을 토로하며 일방적인 성토와 요구를 늘어놓을 때면 전화를 그냥 끊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공무원에 임용돼 업무를 시작하면서 가장 당황스럽고 대처하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민원 전화 응대였다. 민원인이 `이러이러해서 이런 문제가 있다'라고 차분히 설명만 해줘도 감지덕지다. 충분히 상황 파악이 된 후라면, 나도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업무적 지원을 검토하고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감정적 성토를 듣느라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논리가 맞지 않는 민원인의 전화에 억지로 공감해주기에는 내가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고, 그렇다고 전화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한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정신과 의사 출신의 심리상담가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캠프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하는 글을 읽게 됐다. 유가족들의 심리치유사로 활동할 당시 소위 `태극기 부대'로 보이는 노인들이 유가족 캠프까지 찾아와 입에도 담지 못할 험한 말로 세월호 희생자를 욕보이며 행패를 부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현장에 있던 시민들 중 대부분은 노인들에게 큰소리로 맞서 욕하거나 모멸적인 시선을 던지며 무시했다고 한다. 한바탕 소란이 잠잠해진 뒤 심리치유사는 슬며시 노인들에게 다가가 “할아버지, 고향은 어디세요? 자식들은 몇이세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 질문에 노인들은 생전 처음 보는 젊은이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식 키우느라 그동안 고생했던 것부터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내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들과 며느리, 태극기 부대에 가면 자기 이야기도 들어주고 간식도 주고 자식보다 낫다는 이야기까지.

“그러셨구나, 그동안 정말 힘드셨겠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한 할아버지가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응. 근데 내가 아까 젊은 아기 엄마한테 욕 한 건 조금 부끄럽지.”

그러고는 뜬금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달라며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만약 치유사가 일반 시민들과 같이 할아버지에게 틀렸다고 항의하고 맞섰다면 할아버지의 사과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향은 어디세요?'라는 물음 하나가 할아버지 마음을 여는 공감 열쇠로 작용한 것이다.

이 일화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바쁜 업무를 핑계로 일방적인 민원인의 하소연에 기계적 공감을 한 것은 아닐까. 전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의 감정을 묵살한 채로 나도 일방적으로 해결책만을 제시하려 한 것은 아닐까. 민원인의 입장에 대해 좀 더 진솔하게 공감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항상 민원인들의 하소연에 공감해주기는 어렵겠지만 저 심리상담가처럼 소통하고자 마음을 연다면 최소한 나의 마음은 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