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지켜보다
죽음을 지켜보다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9.07.3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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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머리가 쭈뼛 선다. 입관실을 들어선 순간 음습한 기운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느낀다. 천상병 시인의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는 시가 낯설지 않다. 숙부님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소년 가장이 되었다. 의지했던 형님마저 6,25전쟁에 돌아가셔서 어머니, 형수, 어린 조카인 나까지 책임져야 했다. 어린 나이에 나무 지게를 져야 했고, 힘들게 농사일을 하시며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셨다.

숙부님은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했지만 똑똑하시고 야무지신 분이셨다. 힘들게 농사를 지으면서도 틈틈이 영어공부도 하시고 매일 일기를 쓰신 부지런한 분이다. 또한, 어른들을 공경하고 마을의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셔서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했던 분이다.

학원도 없던 시절 숙부님은 나의 훌륭한 가정교사였다. 시간만 나면 나에게 공부를 가르쳐주셨다. 숙부님이 영면永眠하시기 하루 전날, 꼬박 병상을 지켰다. 산소마스크에 의존해 겨우 숨을 몰아쉬시며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기 안타까웠다. 죽음으로 가는 그분의 고통을 그저 지켜보아야 했다.

나는 소리 내어 크게 울 자격조차 없는 조카였다. 아버지와 다름없는 숙부님께 큰 빚을 지고도 은혜를 갚지 못해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장수시대에 84세의 삶의 마감은 이르다 생각되어 더 아쉽고 슬펐다. 고통의 신음이 커진다. 죽음의 강을 건너시는 걸까? 혈압이 뚝 떨어지고 맥박수가 떨어진다. 좀 전까지 싸늘하던 손발이 따뜻하다. 소생하시는 건 아닐까? 간호사를 불렀다. 체온이 급격하게 상승하여서란다. 혈압이 낮아 해열제 투여가 어렵단다. 고통소리가 더욱 커지고 혈압이 뚝뚝 떨어진다. 죽음의 문턱인가 보다. 고통의 크기는 얼마나 큰 걸까? 죽음의 문턱까지 가 본 사람들은 더러 있지만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첨단 의학이 발달했지만 죽음을 막을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소생하시기 어렵다는 의사의 소견에 하느님께 숙부님의 고통을 거두어달라는 간절한 기도만 했다. 거친 숨소리가 잦아든다. 혈압을 나타내는 그래프의 선이 거의 일직선에 가깝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보았던 죽음의 선이다. 산소마스크 속의 입김이 보이지 않고 숨이 멎은 듯 마지막을 알리는 삐? 소리가 들린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에 도착하셨나 보다. 고단했던 이승의 일을 끝낸 모습은 평화스러웠다.

“곱게 빻아 드릴까요? 엉글게 빻아 드릴까요?”

죽음을 분쇄하는 방법을 묻는 소리가 허공에서 맴도는 듯 여러 번 귓전을 울린다. 허무와 슬픔이 봇물 터지듯 왈칵 쏟아졌다. 떨리는 목소리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지막 인사로 숙부님을 보내드렸다.

죽음을 지켜보았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죽음이 문을 두드릴 때 그에게 무엇을 내놓겠느냐?'고 했다. `어떤 삶을 살아야 되나?'를 생각게 하는 명언이다.

숙부님은 부끄럽지 않게 사신 분이다. 평생 부지런하고 진실하게 사셨으니 천국에서 행복을 누리시리라 믿는다.

부富도, 명예도, 권력도 다 부질없는 인생의 헛된 꿈일 뿐, 어떤 삶이 떳떳하고 가치 있는 삶인지 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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