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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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9.07.2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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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세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면, 자신을 표현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표현 예술의 영역에 들어가는 시(詩)의 경우도 그러하다. 중국 시만을 놓고 보더라도, 이 같은 분류는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시인인 두보(杜甫)와 이백(李白)의 경우, 이백은 시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거의 그리지 않고 있지만, 두보는 자신의 모습을 시 속에서 자주 그리고 있다. 그것도 여유롭고 명예로운 것 대신 초라하고 늙고 병든 모습을 말이다.

두보의 시 강촌(江村)을 보기로 하자.

강촌(江村)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맑은 물 한 구비 마을을 안아 흐르고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해 긴 여름 강 마을은 일마다 숨어 없네
自去自來梁上燕(자거자래양상연) 추녀 밑의 제비는 저절로 오고 가고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물속 갈매기는 어울려 노니는구나
老妻畵紙爲棋局(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자식은 바늘을 두들겨 낚싯바늘을
만드네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병든 몸이 필요한 건 약물뿐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천한 몸이 이 말고 무얼 더 바랄까?

시는 강을 끼고 있는 시골 마을의 여름 풍경을 담담히 묘사하고 있다. 한여름이라서 농사일도 잠시 멈춘, 한가롭고 평화로운 정경을 보여 주면서, 시인은 자신의 가족과 자신을 시에 등장시킨다. 중국 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가족을 등장시키기 전에 묘사된 자연 풍광도 가족만큼이나 정겹고 푸근하다.

마을을 껴안고 흐르는 강은 자식을 품은 어미 모습이다. 바쁜 일들이 모두 산속으로 숨어버린 듯, 한가한 여름 강촌의 모습은 큰 잔칫상을 치르고 난 아낙의 모습이다. 처마 밑을 제 집 드나들 듯이 오가는 제비와 물 위에서 장난치며 날아다니는 갈매기들은 천진한 아이의 모습이다. 그 뒤로 등장하는 가족들의 모습은 자연을 그대로 닮았다.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있는 늙은 아내의 모습은 얼마나 정겹고 따뜻한가? 또한 바늘을 두들겨 낚싯바늘을 만드는 어린 아들은 얼마나 대견하고 귀여운가?

이처럼 시인을 둘러싼 자연과 가족은 정겹고 따뜻한데, 정작 시인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병을 오래 앓아 노쇠한 몸인지라 여기저기 약 되는 것만 찾는 신세 아니던가?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한 생활에 안도하면서도 병 들고 늙은 시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잘 그려진 한 폭의 자화상이 따로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거울에 비친 모습은 극히 일부이거나 일시적인 모습일 뿐이다. 한 번쯤은 글로든 그림으로든,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는 여유를 갖는 것이 더욱 절실한 현대의 삶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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