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탐구 보고서
시인 탐구 보고서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9.07.2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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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시인들은 이 세상에 없는 낱말과 계절을 찾아 순례하는 문장 등반가들이다. 때로는 쉼표나 마침표 같은 문장 부호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뉜 연에서 행간의 의미를 읽으며 무수한 우주어를 만들어내는 형이상적 존재들이다. 그들의 머리엔 코스모스 뿌리 같은 가느다란 회로가 다발처럼 엮어 있고 동맥 같은 감성 회로는 비대한 심장을 둘러싸고 휴지休止없이 가동 중이다.

이미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으로부터 쫓겨난 시인들은 허공에 둥지를 틀고 날아가는 새 무리에서 우거진 숲을 감상한다. 하늘을 이불 삼고 장자처럼 살아가는 시공간 밖 4차원들이다. 그들이 보는 허공은 虛空이 아니라 무수한 동맥들로 그물 드리운 빽빽한 공간이다. 그들에겐 가슴 부위에 심안心眼이라는 곁눈이 또 하나 발달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혼탁하면 어떤 이는 세상으로 들어가 몸으로 문장을 빚고 어떤 이는 촛불 아래서 각혈을 하고 어떤 이는 매화초옥에 몸을 가둔다. 시대가 겨울이면 시인들은 흰 눈처럼 상복을 입고 폭포가 된다. 펜을 덮고 몸으로 문장이 되는 사람들, 촛불 하나에 눈을 건 채 몽상으로 날밤을 새울지라도 타고 남은 재 하나에 새로운 우주어를 붙인다.

그러나 여기 이 소인은 아직도 매화초옥에 몸을 가두고 붉은 속살에 씨를 심으며 시를 캐는 방외인方外人으로 살고 있으니 아직 곁눈을 만들지 못함이다. 이따금 역린을 스치는 문장들을 등반하며 턱 아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릴 뿐이다.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많은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경주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중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그는 지구에 내려온 외계인이다. 외계어로 통념의 언어를 사살하며 소리를 시간처럼 배열한다. 그가 탐색하는 시공간은 크로노스의 계절이 상실된 공간이다. 외계와 내계를 드나들며 소리를 채록하는 사람, 김 시인이 사물의 속살을 만지고 간 자리에는 비린내가 진동한다. 사물에도 피부를 입히고 무정물에도 호흡을 부여하며 인간의 시점을 철저히 전복한다. 그는 모국어 중 홑 단어인 열, 물, 곁, 결 등을 즐겨 쓴다. 그는 열을 가진 자, 마르지 않은 자라야만 올라갈 수 있는 외계에서 시간, 그늘, 바람, 소리들 곁에서 결을 만지고 글썽거리며 떠는 삶이다.

비존재로 묻힌 것들에 소리와 색을 입히려고 스스로 골방에 갇혀 사는 시인, 그의 두 눈에 고인 강물은 눈물 같은 열로 기화하여 외계를 자유롭게 출입하는 열쇠이다. 그는 대상들의 눈을 통해 내계를 염탐하는 돌연변이 적 감수성을 지닌 시간 밖 외계인이다.

언어로 언어를 죽이는 시인, 그는 문장 밖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소리와 열, 바람의 시간만이 악보처럼 흐른다.

“나 없는 빈방에서 나오는 그 시간이 지금 내 영혼이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시인의 비유대로 시인은 정말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시인이 울리는 메아리는 삶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 젖기 때문이다. 시인이 느끼는 물리적 계절과 그들이 지닌 사단칠정四端七情은 보편적인 해석으로는 불가능하다. 연암 박지원이 「호곡장론」에서 울음과 웃음은 하나로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인들이 시공간의 경계를 드나들며 마음껏 시어를 채록하는 무한한 우주야말로 시인들에겐 `통곡하기 좋은 울음 터'다. 그들이 건져 올린 수많은 시어도 지구의 촉수를 밝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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