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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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사윤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 승인 2019.07.25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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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사윤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박사윤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며칠째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달빛이 창문 사이로 환히 비추어 한밤에도 대낮 같다. 보름이 지났는데도 어두운 하늘에 구름의 색깔도 환히 보인다. 이런 달빛에 어찌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달 사이로 희미하게 지나가는 구름을 따라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어린 시절, 여름 밤 옥상 마루에 누워 별을 헤아리던 때가 떠오른다. 밤하늘은 온통 보석가루를 뿌려 놓은 듯 반짝였다. 밤하늘의 별을 헤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오늘같이 환한 달빛은 무척 싫어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이었을까? 해가 긴 여름 밖이 어둑해질 때를 기다리다가 밤 9시경이 되면 동네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인다. 나도 이 시간을 무척 기다렸다.

밤늦게 나간다고 엄마에게 야단 맞을까 봐 조심조심 대문을 열었다. 그 순간 철대문의 소리가 왜 그리 큰지 엄마 귀를 자극하곤 했다.

“다 늦은 시간에 어딜 나가려고?”

엄마의 야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후다닥 대문을 박차고 뛰어갔다. 엄마께 꾸중 듣는 것은 무섭지 않았다. 그보다 늦게 도착하여 술래가 되는 게 더 싫었다.

밤에 하는 숨바꼭질은 어두워야 더 재미가 있다. 그때는 밤 9시가 되면 가게들이 거의 문을 닫고 겨우 한두 집의 낡은 형광등 불빛만이 희미했다. 그러면 동네는 온통 어둠으로 뒤덮여 가까이에 숨어도 누가 누구인지 보기가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이런 날이야말로 숨바꼭질의 묘미는 절정을 이룬다. 그런데 오늘처럼 달빛이 환한 날이면 꼭 술래에게 들키곤 했다. 그럴 땐 저 달이 왜 그리 원망스럽던지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어른이 되고 보니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의 정열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은은한 달빛 같은 여인으로 살고 싶어진다.

나는 요즘 아이들에게 달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과학적인 이론과 사실을 설명해 준다. 그러나 내 눈에는 아직도 저 달 속에 방아 찧는 토끼와 계수나무가 생생하게 보인다. 오늘처럼 환한 달빛을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모를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 늦은 밤, 심부름을 갔다 오노라면 달이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게 아닌가. 달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고 막 뛰어가면 달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뛰어가다가 멈추면 달도 가만히 서 있고, 천천히 걸으면 저만치에서 느리게 따라왔다.

늘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나를 따라오던 달이 어른이 되어서는 따라오지 않고 멀게 느껴진다. 아니, 어른이 된 후 바쁘다는 이유로 달이 따라오는지조차 관심이 없는 그런 어른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큰아이가 여섯 살 때쯤 되었을까? “엄마, 달이 자꾸 나를 따라와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아이의 모습 속에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달이 네가 좋아서 자꾸 따라오나 보다.”

내 말에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싱글벙글 차창에 매달려 따라오는 달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때 나는 아이에게 달의 비밀을 말해주지 않았다. 아이도 나처럼 달을 보며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오늘 밤은 유난히 달빛이 환하다. 달빛은 창문을 넘어 거실까지 찾아와 노크한다. 어린 시절 추억여행을 떠나 동무들과 숨바꼭질을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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