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나랏말싸미'라는 제목의 이 영화는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비화를 담은 영화로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하며 여름 극장가의 기대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전에도 세종과 관련된 드라마나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이전까진 볼 수 없던 인물이 한 명 등장한다. 바로 `신미대사(1403-1480)'이다.
신미는 충북 영동군 용산면 상용리 오얏골에서 부친 김훈과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이행의 딸인 정경부인 여홍이씨 모친 사이에서 4남 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속명은 수성이며, 그의 동생인 수온은 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학사를 거쳐 호조판서, 영중추부사 등을 지내고 불경의 국역과 간행에 공이 큰 인물이다.
유년시절부터 외조부에게 한학을 배운 신미는 10세에 성균관에 입학해 수학할 정도로 학식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러나 부친 김훈이 여러 문제로 가산을 몰수당하고 관노로 전락하게 되자 고향에서 멀지 않은 속리산 법주사의 복천암으로 출가했다. 이후 숭유억불 정책으로 쇠락해가던 불교의 중흥을 꿈꾸며 대장경 공부에 전념했다. 이 과정 속에 범서(梵書)를 읽고 번역했는데 자연스럽게 범어와 티벳어, 몽골어까지 능통하게 되었다. 범어에 능통했다는 사실은 훗날 훈민정음 창제에까지 큰 연관을 맺게 된다.
조선 초기 성현(1439-1504)의 『용재총화』를 비롯, 이수광(1563-1628)의 『지봉유설』, 조선 후기 언어학자인 황윤석(1729-1791) 등은 훈민정음이 범자에 근원한다고 밝히며 최근 연구자들에 의해 훈민정음의 범어 기원설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창제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실록의 몇몇 기록을 통해 보면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기사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를 통해 세종이 직접 창제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훈민정음 창제 후 2달이 지난 시점에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는 상소를 올리는 등(『세종실록』 103권, 세종26년 2월 20일자 기사)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세종 혼자서 훈민정음 창제라는 어마어마한 작업을 한 것일까? 만약 누군가 도와주었다면 그들에 대한 기록은 왜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신미대사의 동생인 김수온이 쓴 『복천보장』에 “세종은 유생들의 극심한 반대를 예상하고 문종, 신미,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 5인에게만 훈민정음 창제 작업을 극비리에 명령하였다”는 대목이 나온다. 불교를 터부시하고 승려의 도성 출입 자체를 금지했던 당시 조정의 분위기와 훈민정음 창제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신하들 앞에서 승려가 훈민정음 창제에 큰 기여를 하였다는 사실은 알려지면 안 되는, 비밀에 부쳐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신미가 한글 창제에 참여하였다는 주장은 아직 많은 연구와 논의가 있어야 하는 부분이지만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이야기이고 이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신미대사는 세종대부터 세조대까지 왕들이 총애하고 존경하던 승려로 실록 여기저기에서 등장하고 있다. 세조가 속리산 복천암에 기거하던 신미를 찾아갔던 이야기는 정이품송 등의 설화를 남기며 현재까지 충북을 대표하는 이야기로 남아 있다. 지금도 복천암 옆 능선에는 신미와 그의 제자 학조의 승탑이 남아 있다. 2019년 여름, 우리에게 잊혀졌던 인물인 신미가 다시 세상으로 나올 때 그와 관련된 충북의 문화유산들도 다시금 재조명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참고로 영화에 목판을 새기는 각수로 충북무형문화재인 박영덕 각자장도 출연한다 하니 유심히 살펴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