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적들에 대하여 - 다시, 반민특위를 생각함
우리 안의 적들에 대하여 - 다시, 반민특위를 생각함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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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이건 분명한 전쟁이다.

그 전쟁은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던 74년 전 1945년에 이미 예고되어 있었음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내 장담하건데, 조선국민이 제정신을 차려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국민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일본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해 사실상 경제전쟁을 선포한 아베 신조가 일본의 마지막 조선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의 손자라는 점을 알고 있는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마지막 식민 총독이 “다시 돌아온다”는 섬뜩한 말을 남겨놓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한국인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온갖 핑계를 내놓고 있지만 일본의 속내는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불편함 때문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전범기업에 대한 책임과 배상의 문제가 아니라 혹독한 식민지배가 있던 한국과 일본의 불행했던 과거가 그 근원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멈추지 못하는 일본의 야욕보다 더 진하게 우리 안에 청산되지 못한 적들의 그늘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이 더 커다란 불행이라는 생각을 다만 한순간도 지워본 적이 없다.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미군정 시기엔 용납되지 않았던 `친일반민족행위자 청산'의 국민적 요구가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제헌 헌법 제101조 `반민족행위자 처벌에 대한 특별법'제정의 근거에 따라, 1948년 9월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제정되면서 반민특위가 창설되었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불과 1년 남짓만인 1949년 10월 해체되고 말았는데, 그때 친일 이승만 정권이 반민특위 활동에 뒤집어씌운 프레임은 예상대로 `빨갱이'였다.

프레임(Frame)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생각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생각의 처리 방식을 공식화한 것을 뜻한다.(위키백과사전)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현대인들이 정치·사회적 의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 틀'로 프레임의 의미를 규정하고 있다. 레이코프의 견해에 따르면 적어도 한국 현대사에서 극일(克日) 및 친일청산의 프레임은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에서 왜곡과 변질이 심각하다. 아베 노부유키가 예언한 대로 `서로 이간질하는 노예적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반공'과 `친북'의 프레임 안에 가두어 놓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광분하는 이유의 깊은 속사정에는 4.27 판문점 남북정상의 만남 이후 폭넓게 드리워지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 기류에 대한 조바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틀렸다. 아베 노부유키가 장담한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는데 우리는 `100년이라는 세월'이 아니라, 서구사회에서 300년이 걸린 일들을 불과 30년 만에 이루어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우리는 일본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수없이 해냈다. 꿈꾸는 것만이 가능했던 일본의 기술과 상품성을 당당히 추월해 반도체와 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재역전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만큼 초일류의 위치를 달리고 있다.

100만 명의 순결한 국민들이 기름범벅인 태안 바닷가에 겨울 칼바람을 무릅쓰고 모여 순식간에 깨끗한 바다로 되돌려 놓았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광장과 거리에 운집한 수많은 백성의 힘으로 공동개최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일본은 이런 걸 절대로 해 본 적이 없고, 따라할 수도 없다.

그러니 두려운 것은 일본. 다만 우리 안의 적들을 깨끗이 청산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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