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윤창호법이 불러온 신풍속도
제2윤창호법이 불러온 신풍속도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9.07.22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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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평소 술 접대를 많이 해야 하는 무역회사 영업부장인 A씨는 요즘 금요일에 술을 많이 먹는다. 중요한 저녁 약속 일정을 매주 금요일로 잡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달까지는 금요일에는 술자리를 피했다. 주말에 가족들과 함께 쉬고 싶어서 일부러 금요일에는 일찍 귀가했다.

하지만, 지난달 말 회사 동료 A씨가 아침 출근길에 음주 단속에 걸려 면허 정지 처분을 받게 된 것을 보고 VIP급 인사를 만나는 중요한 `술 접대 날자'를 금요일로 잡고 있다. 다음날 아침이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이어서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2~3주 전에 저녁 약속이 늘 잡아야 하는 A씨의 다이어리에는 벌써 앞으로 한 달여 간 매주 금요일 약속 일정이 적혀 있다.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한 이른바 제2 윤창호 법이 시행되고 나서 직장인들의 음주 풍토가 바뀌고 있다.

특히 대중교통이 아닌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음주 습관이 크게 변했다. 우선 밤늦게 새벽까지 이어지던 2, 3차 술자리를 멀리하고 있다.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저녁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1차에서 술자리를 끝내는 경우가 많아졌다. 술을 한 잔이라도 마시면 음주 운전면허 정지 기준(혈중 알콜 농도 0.03% 이상)에 저촉되도록 법이 바뀌는 바람에 오전 출근 시 숙취가 해소되지 않아 음주 단속에 걸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금요일에 모임을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다음날이 토요일이어서 오전에 운전대를 잡지 않고 집에서 푹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리운전 업계에 따르면 현재 월~금요일 닷새 중 가장 많은 `콜(호출)'이 들어오는 날은 금요일 저녁에서 토요일 새벽 2시까지다. 충남 천안의 경우 금요일 밤의 콜 건수는 다른 평일에 비해 2~3배 이상 많아졌다. 그렇지만 다른 평일(월~목)에는 되레 손님이 크게 줄었다. 대부분 직장인이 2, 3차 술자리를 기피하는 바람에 밤 10시 이후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는 손님이 뚝 끊긴 것이다.

대리운전 업계 말고도 제2 윤창호법 시행으로 울상인 곳이 있다. 바로 밤늦게, 새벽까지 영업하는 야식 집이나 포장마차 등이다.

이들 업소는 `직격탄'을 맞았다. 오전 출근길에 숙취가 해소되지 않아 음주 단속에 걸릴 것을 우려한 `주당'들이 발길을 끊으면서 대부분 업소가 불과 한 달 사이 매출이 쪼그라들었다.

가뜩이나 최저 임금 인상 등 인건비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업소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윤창호법은 2018년 휴가 중이던 군인 윤창호씨가 만취 운전자의 차에 치여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돼 만들어졌다. 음주 운전 사망 사고 시 가해자에게 종전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처하도록 한 것을 최저 3년 이상 징역, 최고 무기 징역까지 선고하도록 처벌 수위를 강화했으며 적발 기준도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운전면허가 정지되도록 강화했다. 음주 운전을 뿌리 뽑자는 사회 각계의 여론에 국회가 입법으로 호응했다.

시행 한 달여가 지난 지금, 아직도 예나 다름없는 음주 단속 적발 건수를 고려하면 성과는 미지수다. 하지만 `주당'들의 음주 행태가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경각심은 충분히 불러일으킨 것 같다.

그러나 단속만을 두려워하는 경각심으론 아직 멀었다. 술을 먹고 운전대를 잡는 순간, 바로 자신의 그 행위가 멀쩡한 한 가정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범죄의 시작이라고 인식하는 `각성'을 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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