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우(時雨)
시우(時雨)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 승인 2019.07.21 1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

 

고향으로 이사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지금 심정은 한마디로 `행복 충만'이다. 세계적인 긍정심리학자인 마틴셀리그먼의 표현을 빌리면 `플로러시(행복이 만개한 상태를 지칭)'다. 사실 아내가 고향으로 가자고 할 때는 크게 마음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간절히 원하니 함께 한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두 달만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참 좋다. 가장 좋은 것은 단순한 삶이다. 나는 밤중형 인간이라 보통은 늦잠을 잔다. 그러나 이사 후에는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강렬한 아침 햇볕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 들냥이인 새봄이와 가을이(이사한 지 사흘 만에 우리 집에 처음 찾아온 방문객)가 아침 달라고 보내는 애교(?) 섞인 울음도 외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꽃을 좋아하는 안젤라 때문에 아침마다 꽃에 물을 주어야 한다. 하루라도 물을 주지 않으면 아직 자리 잡지 못한 꽃들이 금방 머리를 숙이고 만다. 이러다 보면 한 시간이 휙 지나간다. 강의시간에 맞추어 청주에 도착하려면 아침을 서둘러야만 한다.

이런 시간이 좋다.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오직 물 주고 꽃 돌보며 새봄이와 가을이 아침을 주는 행동에 몰입한다. 하나의 행동에 완전히 몰입할 때 행복의 문이 열린다. 아마도 낚시에 몰두하는 강태공의 마음이 이와 같을 것이다.

이렇게 두 달을 지내고 받은 또 하나의 선물은 체중감소다. 만나는 사람마다 날씬해졌다고 한다. 스스로 보아도 그런 것 같다. 몸이 가벼워지니 마음도 가벼워지고 생활에 활력이 생긴다. 이 모든 것이 단순한 활동을 매일 반복한 결과다.

가장 좋은 때는 비 오는 날이다. 비가 오면 일상 활동이 정지된다. 진한 커피 한잔을 들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린다. 꽃잎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울림은 감동이다. 빗줄기에 맞추어 꽃과 나무가 춤춘다. 장관이다. 완벽한 오케스트라다. 물을 자주 주더라도 때맞추어 오는 비는 정말 달콤하다. 흠뻑 물을 마신 땅 위로 모든 생명이 머리를 내민다. 시우(時雨), 때맞추어 내리는 비야말로 하늘의 축복이다. 가뭄을 물리치고 생명을 키우는 위대한 선물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때를 놓치면 일을 그르친다. 청주시가 도시공원으로 큰 홍역을 앓고 있다.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고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는 때에 녹지를 줄이고 아파트를 짓겠다는 시 정책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구룡산과 원흥이 방죽은 단순한 하나의 산이 아니다. 시민의 힘으로 생명을 지켜낸 자긍심의 상징이다.

다행스럽게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버넌스를 구성한다고 한다. 시민들은 시장과 관료들의 결정만을 통보받는 존재가 아니다. 결과보다 과정의 참여가 더 중요하다. 부디 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정치인이 발휘해야 할 가장 큰 능력은 시민들에게 멋지게 물러서는 때를 아는 것이다. 때맞춰 내리는 비처럼 청주시도 시민들에게 단비가 되기를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