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있어 일본은(1)
네게 있어 일본은(1)
  •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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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전영순 문학평론가·칼럼니스트

 

요즘 한일관계가 심상치 않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한국은 경제적 보복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모색 중이다. 이 문제로 인해 과거사까지 들먹이는 것을 보면 단순히 한일관계에 있어서 경제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현 정부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상기했으면 좋겠다(知彼知己 百戰不殆).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사태 파악을 잘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언제까지 역사 탓하고 우방국 눈치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기왕 벌어진 일 누구의 탓이라고 할 때가 아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을 이 시대가 앞당겨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국제무대에서의 한국의 미래와 한일간의 방향이 달라진다.
 우리의 역사는 지금부터 우리가 써야 한다. 직면한 이 문제에 대해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필자는 정치에 문외한이지만, 이 시대에 진정한 영웅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우리 역사는 내란이 있을 때마다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세의 힘을 빌려 연명하다 보니 우리의 주권은 어디에 가 있는가? 먼 미래를 바라볼 때, 지금 우리는 과거사에 얽매여 적폐청산이니, 비리니 하며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다. 겨우 거푸집과 같은 자리 지키기 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는 정치인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기왕 내지르는 김에 한소리 더 해야겠다. 소신 있는 정치가라면 자리에 연연할 할 것이 아니라 후계자를 잘 양성해 노후에도 사후에도 대접받는 인격이 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백 년 이내다. 지금부터라도 살아 있는 동안 후대를 위해 어떻게 하면 이 나라가 외세의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잘 살 수 있는지 청사진이라도 설계해 줬으면 좋겠다. 지금이야말로 초석을 다져야 할 때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국가 간에 전쟁이나 분쟁의 골이 깊어지면 질수록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뿐, 득이 되지 않는다.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이다. 조금 빗나간 얘기이지만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재력가 위런 버핏은 명성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비단 명성뿐이겠는가? 세상사와 상통하는 말이다. 얽히고설킨 역사적 잔여가 청산되지 못한 탓에 과거사 문제에서는 늘 제자리걸음이다. 믿거나 말거나 할 이야기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로 반일감정이나, 혐한감정이 야기될 조짐이 보이기에 일본에 10여 년간 산 경험이 있는 필자는 국가적 갈등을 잘 해결해 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어설프게나마 느낀 바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산골에서 몹시 가난하게 자란 우리 부부는 1990년대 일본 오카야마에 살았다. 출발 전에 친정엄마는 “일본이 어떤 나라인데, 지독한 일본놈들이니 조심”하라며 세뇌 교육을 했다. 사실 학교에서 배운 바나 할머니들에게 들은 얘기로 일본은 나의 적국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일본에 살아보니 생각과는 달랐다. 공동화장실에 한 칸짜리 집에서 신혼살림을 꾸리며 산 나는 재일교포가 한국유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이 꿈만 같았다. 에어컨, 세탁기, 냉장고 등이 잘 갖춰진 그곳에서 생활한 것이 내 생전 처음 느낀 호화로운 생활이었다. 한국유학생기숙사는 파칭코로 재벌가가 된 교포가 제공한 12가구가 살 수 있는 2층 짜리 건물이었다. 가끔 교포들이 마련해 주는 파티와 관광은 낭만적이었다. 우리는 1년도 생활하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학하러 간 남자가 전공이 맞지 않는다고 보따리를 쌌기 때문이다.
얼마 후 옆 사람이 일본 문부성 장학생에 선발되어 미야자키시로 가게 되었다. 우리가 거주할 집은 일본인들만 사는 동네 오래된 일본가옥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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