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싶은 게 죄인가?
배우고 싶은 게 죄인가?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9.07.1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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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없이 살아본 사람은 안다. 배고픈 설움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배움에 한이 맺힌 사람은 안다. 학교라는 이름만 들어도 먹먹해지는 심정을.

먹고살 걱정 없을 것 같은 요즘에도 배움의 기회가 사라질까봐 초조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다름 아닌 시·청각 장애 특수학교 교사와 특수교육대상 학생을 둔 학부모들이다.

지난 7월 1일부터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되면서 정부가 장애인의 서비스 지원을 위해 대안으로 마련한`서비스 지원 종합 조사표'가 시청각 장애 학생들에게는 학교 입학을 좌우하는 동아줄이 됐다.

장애인에 대한 지원 확대를 강화한 정부 정책이지만 시·청각 장애인들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사라질 수 있는 제도적 맹점이 드러났다.

시·청각 장애 학생들은 그동안 장애 특성 상 통학이 어려워 특수교육기관에 입학해 교육받기 위해서는 인근 장애유형별 거주시설(사회복지시설) 입소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번 제도 개편으로 특수학교 입학을 원하거나 전학을 오고 싶은 학생들은 거주시설 입소 선정 기준 제한 점수(서비스 지원 종합 조사 기능제한 항목 19세 미만 아동 110점 이상, 19세 이상 성인 120점 이상)를 채워야 하는 신세가 됐다.

문제는 서비스 지원 종합 조사표에서 시설 입소에 필요한 점수를 충족하려면 중증 시·청각 장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급한 마음에 청주 맹학교, 충주성모학교, 충주 성심학교 등 특수학교장들은 지난 15일 충북도교육청에 시·청각장애학생의 학습권 보호를 위해 사회복지시설 입소 기준을 개선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제출했다.

청각 장애 교육기관인 충주 성심학교의 교장 마리베네딕다 수녀는 “시·청각 장애인을 둔 학부모들의 꿈은 자녀가 마음 편히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며 “장애 학생들이 꿈을 꿀 수 있고,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거주시설 입소 기준을 완화해 주는 게 진정한 복지정책 아니냐”고 지적했다.

장애인을 위한 복지정책이 또 다른 장애인들의 학습권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이유는 정책 입안자들이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년 전 일이다. 교육부가 2022학년도 대입에 필요한 학생부종합전형·수능전형 간 적정 비율, 선발시기 개편 등 중요 사항을 국가교육회의가 결정해달라고 제안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교총은 성명을 통해 대입 중요 사항을 결정해야 할 국가교육회의 참여 인사에 교육현장을 대표하는 교원이나 교원단체 등의 현장전문가가 없거나 배제됐음을 문제 삼았다.

책상머리에 앉아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정책 가운데 쓸만한 정책을 찾기가 어려운 것은 현장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2017년 서울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짓는 문제를 놓고 주민의 반대가 거세자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한 장민희 씨를 기억할 것이다.

일명 무릎 꿇은 엄마로 알려진 그녀가 올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한 사람의 인간이자 함께 살아가는 인격체”라며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마음 편히 다닐 학교를 만들어달라는 작은 바람이 이뤄지기까지 참 힘들었다”고.

장애인들이 공부를 하려면 세상에 무릎을 꿇어야 가능한 것일까?

시·청각 장애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배움의 끈이 끊어질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리베네딕다 수녀의 간절함이 통하는 사회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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