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이 내집 … 그림과 함께 산다”
“그림 속이 내집 … 그림과 함께 산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9.07.16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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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립미술관 초대전 황영자 작가를 만나다
기획전 '놓아라'... 9월 15일까지 50여점 선봬
여성의 삶 · 상처의 흔적 감각적 색채에 담아
좌불부처 밑그림 위 덧그린 자화상 시선 집중

 

“나는 그림 안에서 그림과 함께 산다. 그림 속이 내 집이다. 생각 속에서 그림이 나오고 생각을 그리다 다음 그림으로 옮겨지고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그렇게 작품이 태어난다.”

청주시립미술관 기획전 `놓아라'에 초대된 황영자 작가(78·사진). 3층 전관에 배치된 작품은 모두 작가 자신이다. 원로 여성작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유니크하면서도 색채는 감각적이다. 상처처럼 짙은 흔적에서는 가볍지 않은 사유도 느껴진다. 그녀의 그림의 원천은 어디일까.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기복이 심했고 공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항상 뒤엉킨 실타래처럼 뒤죽박죽이다. 그때마다 나를 잡아 준 것이 그림이다. 미술교사였던 아버지는 남들처럼 하지 말고 세상을 다르게 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림을 거꾸로 걸어놓을 정도였는데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작가에게 전통적인 가부장사회로 유입되는 결혼은 여성으로의 삶의 자각하는 계기였다. 뿌리째 이식하듯 옮겨간 세계는 깊은 상처의 흔적을 짙게 만들어 놓았다. 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좌불한 부처를 밑그림으로 그 위에 덧그린 자화상이다. `내 안에 여럿이 산다'라는 이 작품은 측면의 시선과 여러 개의 팔에 올려진 사물을 통해 여성의 역할과 내면을 담고 있다.

“작품 속에 그려진 남성은 작은 반면 자화상인 나는 상대적으로 크다. 내 안에서 남성의 존재는 작아졌고 자아의 세계에서 중심이 나였다. 문뜩 떠오르는 생각을 화폭에 옮기는데 그렇게 허수아비처럼 텅 빈 가슴을 그림으로 채워가며 살았다.”

억압과 편견의 굴레 속에 살아온 여성의 삶이 그대로 화폭 속에 옮겨져 상처와 치유의 시간으로 흐른다. 화사하면서 원색적인 색채 속에는 암울한 내면이 숨바꼭질하듯 숨겨져 있다. 여든이 넘으면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도 그녀만의 세계를 그려내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예술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다른 학문은 어떤 교육을 통해서 깨우치며 자기 존재의 근원을 알아차린다면 예술가는 다르다. 배워서가 아니고 누가 뭘 전해준 지식이 아니라 그냥 안다. 여행을 가면 미술관의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그곳의 사람들을 관찰한다. 내 칼날 같은 감각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중학교 학창시절 미술대회에 출전한 뒤로 평생 화가의 길을 걷고 있지만, 가족으로부터 예술가로 인정받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독특한 정신세계와 그녀만의 특별한 일상의 일치가 이제 막 빛을 내는 순간이다.

이윤희 학예팀장은 “황 작가는 자신이 바라보는 현실을 초현실성으로 강화시켜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화면을 창조해낸다”며 “그녀의 작품은 전 세계의 페미니즘 미술가들이 이론적 실천적으로 넘어서고자 했던 어떤 지점을 자신의 기질과 필력으로 놀랍도록 가볍게 극복해냈다”고 평했다.

한편, 황영자 작가는 1941년 목포 출생으로 홍익대학교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작을 전시하고 있다. 기획전 `놓아라'는 오는 9월 15일까지다.

/연지민기자
yeaon@cc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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