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멋 4
인생의 멋 4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9.07.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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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사람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술은 다른 음식과는 달리 생존을 위해 먹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려서 흥을 돋우기 위해 마시기도 하고, 홀로 시름을 달래기 위해서도 마시는 게 술이다. 그러면 시인은 술을 왜 마실까? 이백(李白)의 경우는 세속적인 것들과 결별하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 많이 마실수록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그만큼 더 멀어진다. 그래서 돈을 아끼지 않고 술을 사고, 마실 수 있는 한 많이 마신다. 음주는 하나의 신앙과도 같은 것이다.

장진주(將進酒)4

陳王昔時宴平樂(진왕석시연평락) 진왕이 그 옛날 평락관에서 잔치할 적엔
斗酒十千恣歡謔(두주십천자환한) 일만 냥 하는 술도 맘껏 마시며 즐겼다네
主人何爲言少錢(주인하위언소전) 주인은 어찌하여 돈이 없다 하는가?
徑須沽取對君酌(경수고취대군작) 금방 술을 사다가 그대들에게 권하겠네
五花馬, 千金裘 (오화마, 천금구) 오색 빛 말과 천금 갑옷을
呼兒將出換美酒(호아장출환미주) 아이 불러 술과 바꾸어 오도록 하게나
與爾同銷萬古愁(여이동소만고수) 그대 더불어 만고의 근심을 함께 녹이리라

시 속의 진왕(陳王)이라는 인물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인 조조(曹操)의 아들 조식(曹植)이다. 이 사람은 부와 권력을 타고났었지만, 형인 조비(曹丕)에게 권력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진(陳)이라 불리는 변방의 왕으로 밀려나 사실상 권력으로부터 멀어졌다. 그 울분을 그는 술과 시로 달랜 것으로 알려졌다. 시인이 하고많은 주당 중에 그 대표로 조식(曹植)을 뽑은 것일까? 아마도 그 신분이 귀하고 돈이 많아서였을 것이다. 귀한 신분과 많은 돈이야말로 세속적 욕망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조식(曹植)은 대단한 행운아로 보인다. 그러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상실감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다. 그는 평락관이라는 권력의 냄새가 물씬한 정자에서 돈에 구애받지 않고 비싼 술을 마구 마시고 지인들과 농지거리를 주고받으며 즐긴다.

이 장면은 가진 자의 호사로 보이는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시인이 천착한 것은 세속적 가치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점이다. 시인은 공자(孔子)와 같은 성현은 안중에도 없다, 왜냐하면 세속적 가치 틀에 갇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통음을 통해서 돈과 명예를 모두 잊었던 조식(曹植)이 그의 롤모델이었던 셈이다.

인생은 정답이 없다. 그러나 보통은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혀 삶의 참된 가치를 도외시한 채, 한평생을 흘려보내기 십상이다. 생존과 생활이라는 현실적 상황을 마냥 외면하고 멋만을 추구하는 인생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멋스럽지도 않다.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에서 멋을 찾아내고, 가끔은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인생의 멋을 즐긴다고 말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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