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묵
올챙이묵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19.07.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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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올챙이묵이다. 강원도 정선 장에 음식들은 산촌마을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메밀부치기, 전병, 수수부꾸미, 곤드레나물밥 등 토속적인 음식들이 바쁘게 팔려나간다.

장구경도 구경이지만 출출한 시장기에 맞춰 맛난 음식을 먹는 즐거움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유독 한 음식에 눈길이 머문다. 널찍하고 큰 그릇에 노르스름한 올챙이묵은 멀뚱멀뚱 찾는 이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름만 물어보고, 선뜻 한 그릇 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옆에 있는 친구도 처음 보는 음식인 듯 호기심이 가득하다.

올챙이묵 재료는 올챙이가 아니다. 예전에는 풋옥수수를 강판이나 맷돌에 갈아서 걸쭉한 반죽을 구멍이 숭숭 뚫린 바가지에 담아, 물을 끓이는 솥으로 떨어뜨리면 옥수수 반죽은 익으면서 그 모양이 영락없는 올챙이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올챙이묵은 여름철 별미이다. 오래전 할머니와 방학 때 고모님 집에 가면 꼭 한 번씩 올챙이묵을 해주셨다. 자주 접하지 못한 음식인데다 이름이나 모양이 독특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끓는 물에서 익은 묵을 건져 찬물에 씻어내고 양념간장과 김치를 송송 다져서 얹어 먹으면 그야말로 옥수수 향을 간직한 채 보드랍게 술술 잘 넘어간다. 식구가 많은 고모님 댁 마당에 멍석을 깔고, 밥상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올챙이묵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이즈음엔 올챙이묵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예전에는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올챙이모양의 묵이 나왔지만 지금은 옥수수 전분으로 기계에서 뽑아내니 우동가락처럼 굵고 기다란 모양의 국수라 할 수 있다. 예전의 손수 만든 묵에 비할 수는 없지만 올챙이묵의 독특한 맛은 비슷하게나마 간직하고 있으니 오래전, 이 맛을 기억하는 연세 드신 분들은 한 끼 별미로 좋아할 만하다.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이 음식을 좋아하셨다.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오래 약을 드시고 입맛마저 잃고 고생하실 때이다. 약을 드시기 위해서라도 식사를 억지로 두어 숟갈 드시곤 할 때, 올챙이묵을 사서 들고 가면 얼굴에 화색이 돌며 좋아하셨다.

먹을거리가 넉넉지 못하던 시절에 맛있게 드시던 음식이라 그러실까. 진종일 밭일하다 어둑해서야 집에 오셔서 대가족의 저녁준비를 해야 하니 손이 많이 가는 올챙이묵은 자주 해먹을 여가가 없었다고 하셨다. 이런저런 그리움과 추억이 깃든 음식이라 반갑게 여기셨을 터이다. 많이 씹을 필요 없이 부드럽게 잘 넘어가는 올챙이묵에 김치와 양념간장을 얹어서 한 대접 맛나게 드시곤 하셨다.

올챙이묵 한 그릇을 앞에 놓았다. 이제는 이 작은 추억의 음식마저도 함께 나눌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생각에 마음을 적시고 있는데, 한 무리 어르신들이 옆 자리에 우르르 자리를 잡으신다.

노인대학에서 나들이를 오셨다며 앞다투어 올챙이묵을 한 그릇씩 주문하신다. “맛있다”를 연발 하시며 배곯고 고생하던 젊은 시절이지만 그때가 그립다는 이야기꽃을 피워낸다.

그렇게 올챙이묵은 추억과 그리움을 가득 안고 마음으로 먹는 음식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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