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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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07.1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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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데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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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아이였고 엉뚱한 상상을 곧잘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초반 도시로 이사를 오면서는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아마 나의 긴 사춘기와 알아둬도 쓸데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한한 공상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프레드릭』을 읽을 때 불편하다. 프레드릭과 닮았지만 지금의 나는 어떤 역할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그렇지만 워낙 명작인 탓에 수업에 꼭 들어가는 필수 아이템이라 자주 『프레드릭』과 만난다.

오래된 돌담이 둘러쳐진 들판, 농부가 이사 가고 버려진 헛간에서 들쥐들은 겨울을 대비하고 있다. 단 한 마리, 프레드릭만 빼고. 왜 일을 하지 않느냐는 다른 들쥐의 물음에 눈을 반쯤 감은 프레드릭은 자기도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대답한다.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혹은 “색깔을 모으고 있어, 겨울에 온통 잿빛이잖아” “기나긴 겨울을 위해 얘깃거리를 모으고 있어” 거참 먹이를 모으는 일을 하는 들쥐에겐 설득력이 없어 보이는 대답이다. 착하고 다정한 들쥐 가족은 엉뚱한 대답으로 일관하는 프리드릭도 함께 겨울을 나기 위해 돌담 틈새로 난 구멍으로 들어간다. 처음엔 먹이가 넉넉했기에 바보 같은 늑대와 어리석은 고양이 얘기를 하며 지냈다. 그때는 행복했다.

겨울이 깊어 갈수록 바닥이 나버린 들쥐들의 양식. 찬바람이 스며드는 돌담 틈에서 누구 하나 재잘대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때, “네 양식은 어떻게 되었니, 프레드릭?” 하고 들쥐들이 묻는다. 커다란 돌 위로 올라간 프레드릭은 “너희들에게 햇살을 보내 줄게, 찬란한 금빛 햇살이 느껴지지 않니?” 그러자 다른 들쥐들은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프레드릭은 마법이라도 부리고 있는 걸까, 눈을 감은 들쥐들에게 파란 덩굴 꽃과 노란 밀짚 속의 붉은 양귀비꽃, 초록빛 딸기 덤불 얘기를 들려준다. 들쥐들은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색깔들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프레드릭은 무대 위에서 공연이라도 하듯이 멋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마친 프레드릭에게 “넌 시인이야!” 들쥐 가족은 감탄하며 칭찬한다. 플레드릭은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말한다. “나도 알아”

`개미와 베짱이'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는 『프레드릭』은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열어준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각자의 성격과 기질대로 살아간다. 어떤 일은 육체의 배를 불리기도 하고 또 어떤 일은 영혼의 배 불리는 일도 있다. 프레드릭의 게을러 보이던 일은 모양이 다를 뿐이지 자신과 타자를 위한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베짱이의 여름나기와는 의미가 다르다. 프레드릭이 하는 일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동시에 공동체에 이로운 영향을 끼친 데 있다.

이젠 나를 다독이고 싶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성취감이나 가치가 무대 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나를 사랑하는 일이고 타자와 평화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취미 생활을 하기 위해 돈을 벌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대의 풍조에 압박을 느끼는 청소년이나 취준생은 자기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한 사유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본의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적인 프레드릭 같은 사유가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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