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끙끙
둥글게 끙끙
  • 전영순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1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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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전영순 칼럼니스트
전영순 칼럼니스트

 

두 개의 감자를 강아지 앞에 “휙” 던져놓고 강아지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신기한 듯 달려가 앞발로 툭툭 건드려보더니 갸우뚱거린다. 뭘까? 너와 나의 거리에서 주춤거리게 하는 이것?

요즘 목이 좋은 거리에는 참외와 수박이 트럭에 실려 신호등 옆에 자리하고, 감자와 양파는 골목마다 풍경처럼 앉아 있다. 담벼락 높이만큼 쌓인 감자 상자와 빨간 망속에 탱글탱글한 양파를 보면 내 마음도 왠지 둥글게 그들 곁으로 다가가 앉는다. 아주 튼실한 물건이 헐값에 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걸 보니 올해는 감자와 양파가 풍년인가 보다. 감자와 양파를 마치 맞선이라도 보이려 데리고 나온 것처럼 할머니는 바구니에 그들을 다소곳이 앉혀놓는다. 손님이 뜸하면 할머니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감자와 양파를 만지작거린다. 감자는 누가 지나가면 이때다 싶었는지 데구루루 굴러 길손들의 시선을 끌어당겨 할머니 곁으로 발길을 돌려놓는다.

거리에 나와 있는 이들은 인정의 손길에 따라 덤과 약간의 흥정이 가능하다. 괜스레 한 마디 던져 가격을 흥정하거나 하나 더 달라고 넌지시 말을 던질 때가 있다. 어릴 때 엄마 따라 장에 가 눈여겨 쌓아온 나만의 엣지가 거리에서는 잘 먹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마트에 감자 한 상자 사려갔다가 담당자가 눈치껏 주먹만 한 마늘 두 통을 덤으로 주는 바람에 한 상자 더 산 적도 있다. 별것 아닌 것, 소소한 것에 전부를 걸고 흥정이 잘되면 무슨 큰일을 성사라도 시킨 것처럼 흐뭇해하는 소시민의 삶을 나는 가끔 즐긴다. 지금 우리 집 베란다에는 감자 다섯 상자와 대형 양파 두 망이 방긋거리고 있다. 올여름은 아마도 그들과 주고받은 탱글탱글한 눈빛으로 아주 둥글어질 것 같다.

며칠 전 지인이 맛있는 감자를 살 생각이 없냐며 문자가 왔다. 그 전날 나는 이미 엄청 마음에 드는 감자를 한 상자 산 상태이다. 대천에서 직접 농사지은 것이라 맛있으니 믿고 사라는 말에 순간 동생들이 떠올랐다. 한 상자씩 사 줘야겠다는 마음에 감자가 꼭 커야 한다고 강조했더니 답장이 오기를 본인 불알만 하단다. 나는 잘은 모르지만 자신 있으니까 `우스갯소리라도 하겠지'싶어, 그럼 네 상자 보내 달라고 주소를 보냈다. 배달은 청주 시내 이외는 안 된단다. 하는 수 없이 우리 집으로 배달을 받기로 했다.

다음 날 대천에서 지인의 친구가 직접 트럭을 몰고 배달을 왔다. 맛있는 감자를 먹게 주셔서 고맙다고 깍듯이 인사하고 돌아간 뒤 일단 한 상자를 열어봤다. 작은 달걀만 한 것들이 말똥거리며 쳐다본다. 순간 `얘들 도대체 뭐야'하는 실망감에 집에 있던 감자와 크기를 비교해 보았다. 정말 일곱 배가 차이 났다. 이 감자를 도저히 동생들에게 줄 수가 없다고 문자와 함께 사진을 찍어 보냈다. 한참 침묵 후 죽을죄를 지었으니 어떻게 보상해주면 되냐고 한다. 무슨 죽을죄, 좋은 일 하려고 한 것밖에 없는데. 순간 나는 주고받은 문자가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줘도 개도 안 먹는다'라는 말을 차마 못 하고 꾹꾹 담아 감자밭으로 돌려보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님이 건강하실 때 “누구 며느리는 물건이 나오기도 전에 들어 번쩍할 정도로 팔아준다며” 은근히 농산물을 내게 좀 팔아달라는 눈치셨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는 나는 죄송하게도 “어머님 저는 그런 것 팔 줄 몰라요.” 하며 거절했다. 재주가 많은 동서는 이웃들에게 시댁 물건을 수시로 팔아줬으니 얼마나 예뻤을까? 농사를 짓는 것도 그렇지만 팔로워가 막막한 어머님에게 동서는 구세주였을 게다. 감자는 커야 맛있다는 내 고정관념을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이틀이 멀다고 들기름에 노릇노릇하게 구운 감자를 먹으며 생각한다. 감자는 크기가 아니라 농심을 담아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고. 아들은 엄마 또 감자야? 남편은 찌게 마다 웬 양파탕? 누가 뭐라고 해도 오늘도 나는 감자를 깎고 양파를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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