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명장 김유신 진천에서 태어난 까닭은
신라의 명장 김유신 진천에서 태어난 까닭은
  • 박소연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 승인 2019.07.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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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소연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박소연 충북도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태종무열왕을 도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김유신. 그가 태어난 곳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가 아니라 바로 충청북도 진천이다. 어쩌다 김유신은 진천에서 태어나게 된 것일까?

이것은 당시 신라의 신분제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신라에 항복한 가야사람으로, 신라의 진골(眞骨) 계급이었다. 반면 어머니 만명부인은 진평왕의 동생으로 왕족 즉 성골 계급이었다. 당시 신라의 골품제(출신 성분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신라의 신분제도)에 따르면 신분이 다른 계급 간에 혼인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두 사람의 사랑을 반대한 만명부인의 아버지는 김서현을 만노군의 태수로 임명하여 멀리 쫓아버리게 되는데, 이때 만명부인이 김서현을 따라 만노군까지 오게 되었다.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 만노군이 바로 지금의 진천군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노군 계양마을에서 살게 된 김서현과 만명부인 사이에서 김유신이 태어났으며, 진천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계양마을은 현재 진천군 진천읍 상계리 일원이며, 이곳은 사적 제414호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이 남아 있다. 진천에는 이외에도 다수의 김유신 관련 유적과 설화들이 전해지고 있다. 경주에는 김유신 관련 유적이 8곳 정도 남아있는 데 비해, 진천에는 그 2배나 되는 16곳이 남아있는 것이 흥미롭다.

진천에 남아있는 김유신 유적은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김서현의 집무실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연보정(蓮寶井·삼국시대 우물)과 태령산성 등을 비롯해 길상사(吉祥祠, 충청북도 기념물 제1호) 서발한사당터(舒發翰祠堂터), 김유신이 수련을 했다고 전해지는 화랑벌, 말탄터, 치마대(馳馬臺)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태실유적이다. 태실유적은 아기가 태어날 때 함께 나오는 태반과 탯줄을 묻어 놓은 것을 말한다. 김유신의 태실은 진천읍 상계리 태령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자연석으로 둥글게 기단을 쌓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봉분의 형태를 하고 있다. 또한 태실 바깥쪽 경사면에는 석축을 쌓아 성지임을 표시한 태령산성이 있다.

이렇듯 태실을 조성하는 행위는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널리 행해졌다. 이것은 `태장경(胎藏經)'의 “대체로 하늘이 만물을 낳는데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사람이 날 때는 태(胎)로 인하여 장성하게 된다. 하물며 그 어질고 어리석음과 성하고 쇠함이 모두 태에 매여 있으니 태란 것은 신중히 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는 내용에 따라 비롯되었다. 즉 사람의 태가 그 사람의 길흉을 좌우하니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태실을 조성해온 우리의 풍습은 현재에 이르러 탯줄 도장, 탯줄보관 인형 등을 만드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매년 출산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지만, 새롭게 태어난 생명에 대한 기쁨과 경외감을 비롯하여 그의 일생이 순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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