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여행의 이유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19.07.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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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처음으로 국제선 비행기를 탔을 때가 기억난다. 비행기를 타고 수속 밟은 일은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아주 익숙한 것처럼 행동했지만 나는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하필 환승도 해야 했다.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가기 위해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는 같은 일정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등을 뒤쫓았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그 긴장감은 공항을 갈 때마다 떠오른다. 약간은 기분 좋은 흥분으로 유지되는 그런 긴장감 말이다.

그 긴장감을 시작으로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처음 여행은 의무감으로 떠났다. 대학생인데 배낭여행은 해봐야지 않겠냐는 오빠의 권유에 휴학도 했겠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45일간의 유럽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여행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나는 우주 속의 먼지 같은 미미한 존재라는 것이다. 내가 속한 세계에서 딸로, 직장인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살고 있을지 모르나 말도 안 통하는 지구 저편에 가져다 놓으면 그냥 키 작은 동양 여자일 뿐이었다.

나는 여행을 왜 하는 걸까? 나는 첫 해외여행에서 느꼈던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다시금 느끼고 싶을 때 여행을 간다.

도서 `여행의 이유'(김영하 저 · 문학동네·2019)에서 김영하 작가는 그런 나의 마음을 대변하듯 “여행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우리는 노바디가 되기 위에서 여행을 떠나고 섬바디로 구별되고 싶을 때 돌아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여행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숙소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편안함을 작가와 함께 느끼고 다음 여행 속에 나를 상상하게 만드는 책이다. 다만, 나의 여행을 작가처럼 설명할 수 없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여행이 넘쳐나는 시대다. 국내, 국외 할 것 없이 주말이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일상에 지쳐서 `노바디'가 되고 싶어 떠나는 사람도 있고, 그야말로 `인싸'가 되고 싶어 떠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마다 여행의 이유를 찾아 떠난다.

나는 오늘도 여행을 떠날 그날을 기대한다. 언젠가 600km가 넘는 산티아고 순례기를 걸을 것이며 구름 위의 또 다른 세계인 마추픽추를 보러 갈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나는 오늘 현재에 집중하고 오늘 주어진 24시간 여행을 잘 마무리 할 것이다.

매일 아침 여행 떠나듯 가방을 챙겨들고 도서관을 온다. 일상 속 도서관인데 새로운 순간들은 매번 찾아온다. 여행지에서 뜻하지 않은 경험이 추억이 되듯 그렇게 일상 속에서 차곡차곡 추억을 쌓는다. 매일 도서관으로 여행가는 나는 축복받은 여행자이다. 작가가 여행을 떠나는 것에 적합한 직업이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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