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은 최악의 하수다
불매운동은 최악의 하수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7.0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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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전쟁 중에는 지휘관을 교체하지 않는 법이다. 아베 일본 총리의 한국에 대한 경제적 선전포고는 이 같은 원칙에 기반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베 정권은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보수층을 부추겨 개헌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한국과의 갈등 키우기는 목표 달성에 호재가 될 수도 있다. 아베가 한국을 겨냥해 반도체와 주요 OLED 소재의 수출 규제에 나선 것을 두고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보수와 지지층 결집을 위해 한국을 때리기 시작했다”는 일부 일본 언론의 비판은 이를 뒷받침 한다.

일본의 대표적 경제지 닛케이는 “한국기업의 큰 고객인 일본 기업에도 타격을 준다”고, 도쿄신문은 “일본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경고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보수층에 어필하려는 노림수”라며 “눈앞의 인기 때문에 국익을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가 이런 이치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국내외적 눈총을 무릅쓰고 보복을 강행한 것은 치밀한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한국만 당하는 전쟁은 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도 어느 정도 상처를 입어야 반한(反韓) 감정이 불거질 터이고, 유권자들이 그 감정 풀이에 나설 아베에 힘을 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국익보다 장기집권이라는 사익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을 국권을 지키는 지도자로 포장하는 데 한국을 활용하겠다는 속셈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미들급과 플라이급의 싸움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자신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에겐 한국에도 같은 논리를 펴는 우군이 있다. 한국당과 일부 보수언론은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이 자초한 결과”라며 정부를 타박한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현 정부가 뒤집어 일본과의 신뢰가 깨졌다”거나 “강제징용과 관련한 대법원 재판을 지연시킨 것을 적폐로 몬 것도 원인”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강제징용 재판은 피해자들이 자신들을 착취·학대하고 임금을 체납한 일본 기업에 배상을 청구한 개인적 소송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우리 정부가 일본에서 받은 무상자금 3억 달러 가운데 피해자들에게 돌아간 금액은 2%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부 간 협정에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당시 강제로 끌려가 착취당한 기업을 상대로 직접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한일청구권협정은 이들의 소송까지 막을 근거가 없고, 해당 기업은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의 골자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불완전한 한일청구권협정만 고집하며 상대국 사법적 절차까지 부정하다 급기야 경제적 우위를 무기로 치졸한 갑질에 나섰다.

지난 정권이 피해자는 물론 절대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사천리로 밀어붙인 것이 한일 위안부협상이다. 문재인 정권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수를 위한 적절한 노력'등 비공개 합의내용이 드러나자 합의 이행을 중단했다. 일본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한 10억엔을 돌려주기로 하면서 첨예한 한일갈등이 시작됐다.

상황은 확전을 바라는 아베의 바람대로 흘러가는 형국이다. 정부는 일본의 조치를 경제보복으로 규정하고 WTO 제소 등 상응조치를 강구하기로 했다. 문제는 일본의 도발이 정부 대응에 그치지 않고 민간의 반발로 확대될 조짐이 보인다는 점이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하자는 목소리가 터지기 시작했고, 온라인에는 아이돌그룹의 일본인 멤버를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이 같은 반응은 아베가 쳐놓은 그물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악수 중의 악수이다. 불매운동은 일본국민의 감정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민간의 충돌은 아베에게 추가 경제보복의 명분만 안겨줄 뿐이다. 실익도 없을 뿐 아니라 부당한 경제보복에 대처하는 우리 정부의 명분마저 희석시킬 수 있다.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공언한 만큼 차분한 마음으로 추이를 주시하는 민간의 자제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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