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은 단호하고 정확하게
판단은 단호하고 정확하게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7.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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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21세기 철학은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 트렌드이다. 판단을 한다는 건 내가 전제되는 일인데 근대의 자아에 신물을 느낀 현대인이 판단을 중지하는 철학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단을 하지 않으면 내면을 들여다보기는 좋지만 현실 속에서 살아가기 쉽지 않다. 현실적인 일들은 판단이 쌓여서 성사되기 때문이다. 철학에서는 판단을 하지 않으려면 세속을 떠나야 하고 현실 속에서 살려면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세속을 떠나서 판단에 매이거나, 현실에서 살면서 판단을 하지 않는다면(잘못한다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세속을 떠나서 판단에 매이는 사람은 혹세무민(惑世誣民)하게 돼 있다. 사이비 교주가 이에 속한다. 이들은 종교적인 진리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판단하고) 그걸 다른 사람에게 진리인 것처럼 설득한다. 성직자 중 이런 사람들이 지옥에 가장 먼저 간다. 종교적 진리는 인간의 판단에 종속되지 않는데 자신의 개인적 생각(판단)을 절대적 진리라고 속이는 건 가장 큰 죄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판단(결정) 불능자도 그 폐해가 만만치 않다. 사이비 종교는 안 믿으면 그만이지만 사람의 판단은 그를 둘러싼 조직에 직접 폐해를 끼친다. 현실에서의 판단은 명확하고 단호한 것이 좋다. 우유부단해서 판단을 못하거나 부화뇌동해서 판단을 수시로 바꾸면 조직이 망가진다. 판단할 때 판단을 못하는 것도 조직의 운영에는 장애가 된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사례를 들어보자. 오나라 왕 부차는 아버지 합려의 복수를 위해 편한 잠자리에 들지 않고 땔나무 위에 누워(臥薪) 잠을 자면서 마음을 다진다. 복수를 다짐하는 부차는 결연하다. 우유부단하거나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부차는 월나라와 싸워 아버지의 원수인 구천을 포로로 잡았다. 구천은 부차의 부하인 백비에게 뇌물을 주어 자신을 죽이지 말라고 간언할 것을 요청한다. 부차는 백비의 말에 넘어가 구천을 죽이려는 판단을 번복한다. 부차의 종으로 전락한 구천은 예전의 부차처럼 쓸개를 씹으면서(嘗膽) 복수의 칼날을 간다. 부차는 자신의 판단을 번복하는 부화뇌동의 실수를 범했으나 구천은 예전의 부차처럼 삶의 태도가 결연(決然)하다.

구천에게 넘어간 백비는 구천을 월나라로 돌려보내자고 다시 간한다. 이에 부차는 구천을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재상인 오자서가 구천을 놓아주면 안 된다고 하자 부차는 다시 마음을 바꿔 구천을 돌려보내지 않는다. 오락가락한다.

구천의 신하인 범려는 구천에게 부차의 병이 쾌차할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부차의 변을 찍어 먹어보라고 간한다. 이에 구천이 그건 차마 못하겠다고 하자 “부차는 아녀자의 어짊만 있고 장부의 결심은 없습니다. 그래서 결심했다가는 곧 마음이 달라지곤 하니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써야 합니다”라고 간한다. 이에 구천은 범려의 말을 듣고 부차의 변을 찍어먹으며 완쾌를 예견한다. 부차는 자신의 대변을 찍어먹으면서까지 마음에 들게 행동한 구천을 돌려보내기로 결정을 바꾼다.

월나라로 돌아간 구천은 부차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자신의 궁궐을 짓기에는 나무가 너무 크다고 오나라로 보내 궁궐을 짓는데 국력을 낭비케 하고, 서시와 정단을 뽑아 오나라로 보내 주색에 빠지게 한다. 리더가 우유부단하고 부하뇌동한데다 아첨에 교만해진 마음까지 갖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결국 오나라는 구천의 월나라에 패해 부차는 구천 앞에서 자결함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부차의 우유부단과 부하뇌동은 자신의 삶뿐 아니라 나라까지 망하게 했다. 세속에서 판단은 이만큼 중요하다.

대통령이 무서운 것은 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정을 해 놓고 번복하면 무섭지 않게 된다. 때늦은 판단은 쓸모가 없다. 판단을 하지 못하면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 가장 나쁜 것은 판단의 번복이다.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까지 우습게 만든다. 리더의 결정은 무서워야 하고 그래야 조직이 운영된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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