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바리스타를 보며
로봇 바리스타를 보며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6.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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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휴학 중인 아들이 알바를 구한다는 커피숍에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없어서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학생들이 알바 구하기도 힘든 세상이 됐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자격증이 필수가 될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런데 얼마 후 신문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고는 조만간 비리스타 자격증도 무용지물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로봇 바리스타가 손님이 주문한 커피를 드리퍼로 만드는 사진이었다. 이 로봇은 집게발로 컵에 담긴 원두 가루를 드리퍼에 붓고 능숙하게 기계를 작동해 3분 만에 커피를 완성한다고 한다.

이 로봇은 주문받을 커피의 종류에 맞춰 물과 온도를 조절하는 것은 물론 원두의 특성에 따라 물줄기의 강도를 달리하는 기법까지 촘촘하게 입력해 설계했다. 맛을 본 고객들도 사람 바리스타가 만든 커피와 차이가 없다고 평가했다. 아들이 바리스타 자격증이 없어 알바 면접서 탈락했다는 비보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는지

이 장면이 첨단산업의 개가요 인류문명의 결실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자격증까지 따서 어렵게 알바를 얻은 젊은 친구들이 로봇에게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걱정부터 앞섰다.

이런 생각은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된 무인주문기 `키오스크'를 볼 때도 떠오른다. 키오스크 보급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은 사업주가 인건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업종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카오스크 1대가 아르바이트생 1.5명 몫의 일을 한다고 한다. 한 달 대여료가 10만~ 30만원 정도라니 마다할 업주가 없을 것이고, 알바생의 퇴출은 키오스크 보급에 비례해 늘어날 것이다.

미국의 스타트업 `뉴로'는 무인자동차로 슈퍼마켓에서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집까지 배달해준다. 이 첨단기기는 슈퍼마켓과 소비자에게는 축복이지만, 배달로 생계를 잇던 운전기사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다. 글로벌 배송 기업 `페덱스'가 얼마 전 개발한 배송전용 로봇 `세임데이 봇'은 수천, 수만명의 일자리를 앗아 갈 공산이 높다. 이런 상황이 지구촌의 보편적 현실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스웨덴의 첨단 산업도시 예테보리에서 의미심장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오는 2026년 준공 예정인 크르스베센 역에 근무할 직원을 미리 뽑는 프로젝트인데, 이 역의 디자인 공모에 당선된 예술인들이 주도하고 있다. 고용된 직원은 월급 260만원(초임) 정도를 받고 평생 일하게 된다. 월급은 물가에 맞춰 인상되고 휴가와 직장연금도 보장된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직원이 하는 일이다. 아침에 출근해 역사에 불을 켜고 저녁에 불을 끄고 퇴근하는 것이 전부다. 출근과 퇴근 시간 사이에 직원은 낮잠을 자든 집에 돌아가 아이와 놀다 오든 무한 자유를 즐긴다.

2026년이 되면 크르스베센역의 일자리가 AI(인공지능)와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을 전제로 한 실험이다. 예술가들은 다가올 미래에 인간의 노동력이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떤 가치로 인정받을지를 다 같이 고민하자는 취지로 이 실험을 시도했다고 한다. 고된 노동은 기계가 하고 인간은 하루 두 번 스위치를 작동하는 것으로 업무를 마치는 유유자적의 시대. 실업자가 속출하고 임금도 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부정적 전망과는 다르게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직원의 월급은 크르스베센역이 아니라 실험을 이끄는 예술가들이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디자인 공모에서 받은 상금을 운용해 급료를 충당할 요량이다. 유효하지도 않고 실현 가능하지도 않은 해법이기는 하다. 그래도 닥쳐올 절체절명의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느냐는 세상에 대한 추궁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취약한 복지기반에 초고령화 사회를 목전에 둔 데다 최악의 청년실업까지 겪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 절박한 과제일 터이다. 사생결단의 싸움질로 날을 새는 정치권을 보면 스웨덴의 예지적 예술가들을 모셔다 특강이라도 듣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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