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부 하빠
하부 하빠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9.06.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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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손녀는 나이배기다. 18년도를 1주일 앞두고 태어났으니 개월로는 18개월이지만 나이는 3살로 억울한 나이다. 같은 나이의 오진살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면 늘 쳐진다. 그럴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어쩌랴. 거꾸로 생각하면 앞으로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니, 훗날 1주일 차로 언니, 누나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갈 것이 아니겠는가.

요즘 그 손녀 재롱떠는 맛에 산다. 엄마 아빠는 일찌감치 배웠지만, 할아버지란 말은 발음이 힘든 모양이다. 글자 수도 4글자지만 받침이 있어 더 그럴 텐데 손녀는 나를 “하부”하며 부른다. “할아버지께 인사”하면 양손을 배꼽에 얹고 허리를 90도로 구부린다. 그러고는 쫓아와 볼에 뽀뽀하고 목에 매달려 찰거머리가 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

얼마 전 전직 경찰서장 할아버지가 쓴 `하빠의 육아일기'란 책을 읽었다. 저자는 33년 동안 경찰관으로 재직하며 바쁘게 살았던 전직 경찰서장이다. 경찰직에서 퇴직한 뒤 그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오롯이 손주들을 위한 `하빠'가 된 이야기다. 산문집 `하빠의 육아일기'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부모와 은퇴자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안겨준 이야기로 7년 전 퇴직한 그는 바쁜 자녀를 대신해 손주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서툰 솜씨로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이고 함께 놀아주는 등 자녀들에게 못다 한 사랑을 손주들에게 주었고 이제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하빠'가 되었다. 어린 손주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육아일기를 쓴지 3년째. 그는 시간이 지난 뒤에도 손주들이 할아버지가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침이면 손녀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린다.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아기가 깨어나면 천장 쪽에서 소리가 들린다. `콩, 콩, 콩'아들네는 2층에 살고 나는 아래층이다. 활기찬 손녀는 발걸음 소리도 힘차다. 마치 `하부. 나 일어났어요. 어서 올라오세요.'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아무리 보고 싶은 손녀지만, 아들네라 한들 불쑥 식전바람에 들어서는 것도 안 좋다. 마치 손녀가 그걸 알기라도 하는 듯 내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니.

안아주고, 업어주고, 먹여주고, 놀아주고, 씻겨주고. 고 앙증맞게 귀엽고 예쁜 손녀를 위하여 오일장에서 애완용 토끼 한 쌍을 샀다. 토끼를 본 손녀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밥 먹는 것도 잊고 온종일 토끼와 놀았다. 이보다 더 흐뭇한 일이 있을까만 막상 밤이 되자 걱정거리가 생겼다. 토끼를 아기와 함께 잠을 재울 수 없는 노릇인데 도시 떨어지려 하지를 않았다. 간신히 떼어놓고 손녀는 잠이 들었으나 이젠 토끼가 걱정이다. 내처 라면박스에서 키울 수는 없다.

토끼장을 지어 주기로 했다. 다음날부터 서툰 솜씨지만 목공이 되어 뚝딱거렸다. 자재가 준비된 것도 아니고 합판이며 각개 목, 철망 등 이것저것 재활용품을 주워 모은 것들이다. 난생처음 해보는 목공 일은 얕잡아볼 일이 아니었다. 30도를 웃도는 뙤약볕 아래서 못에 찔리고, 망치에 손가락을 얻어맞아 멍이 시퍼렇게 들어가면서도 마냥 행복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드디어 5일간의 공사과정을 마치고 토끼장이 완성되었다. 외형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나름 흡족했다.

아들 때는 손수 기저귀 한번 갈아주지 못하고 키웠다. 사업이 한창 일어나는 시기, 바쁘다는 핑계였을까. 보수적이고 가부장적 기치가 있었던 건 아닐까. 아무튼, 그땐 대다수 남편이 그랬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아기 똥은 똥도 달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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