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이불비(哀而不悲)
애이불비(哀而不悲)
  • 박사윤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 승인 2019.06.2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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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사윤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박사윤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오늘은 해금을 배우는 날...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대를 잡았다. 열여덟 살 소녀처럼 설렌다. 바람이 난 게 분명하다. 따분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뭔가 다른 세계에 빠져들고픈 생각에 낯선 곳을 기웃거린다. 이거다. 새로 즐길 거리를 찾았다. 흥이라는 놈은 날 때부터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음치, 박치, 몸치 삼박자까지 두루 갖춘 내가 찾은 건 음악 그것도 전통 현악기 해금이었다. 6개월째 고민 고민하다가 큰 맘 먹고 풍류의 세계로 들어갔다.

해금은 작은 울림통에 세로로 대를 세우고 울림통과 대 사이에 두 개의 줄을 연결하고 그 사이에 말총(馬毛)으로 만든 활대로 문질러서 소리를 낸다. 고려 예종 9년 송나라에서 수입해 개량한 찰현( 絃) 악기 중의 하나로 악기 소리를 본떠서 `깡깡이'나 `깡껭이', `앵금'또는 `행금'이라고도 부른다.

해금을 배우게 된 동기가 있다.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어능력시험 듣기 평가에서 시험 방송으로 깔리는 음악이 해금연주이다. 우리는 영어 듣기평가 볼 당시 듣기 시험 방송으로 클래식을 들었는데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어 듣기시험에서 우리의 전통 악기 소리를 들려주는 게 좋은 것 같다. 자주 듣다 보니 소리가 친근해지고 마침내 배우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소리에 끌렸는데 막상 시작하니 생각보다 어렵다. 악보만 해도 세로로 된 정간보로 음은 한자로 표시되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정간보는 한자로 음을 표기하여 한눈에 쉽게 들어오지도 않고 익숙하지 않았다.

해금은 금석사죽표토혁목(金石砂竹瓢土革木) 8가지의 재료로 만들어졌다. 고운 성질은 하나도 없이 차가운 재료만으로 되어 있어 거친 소리에 촌스러운 느낌이지만 울림통은 오동나무로 만들어서 소리가 부드럽다. 정악과 산조, 그리고 창작음악 등의 고유 악상을 살리기에 적합한 것도 단순한 생김보다 예스러운 멜로디와 선율 때문이다.

두 줄만으로도 다양한 음정을 나타낼 수 있는 건 힘 조절이다. 잡는 방법이나 위치가 같아도 힘을 주는 세기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현을 잡는 손가락의 힘이 10%, 20%, 30%에 따라 소리가 달라졌다. 눈은 정간보를 보고 왼손은 힘을 주었다 뺐다 조절해야 되고 오른손의 힘은 빼고 활을 켜야 했다. 정신이 하나 없다. 그만큼 많은 집중이 필요하다. 잠시 딴생각만 해도 균형이 깨져버려 엉망이 되고 만다.

다만, 두 줄뿐이라서 쉽지 않을 듯했으나 연주자의 기량과 농현의 조절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 단순한 생김에 비해 오묘한 음정이 나오는 걸 보면 그만치 특별한 악기다.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이 많을 때 잡념이 없어지는 효과는 물론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면서도 절제된 매력이 느껴진다.

어느 날 선생님께 해금을 어떤 악기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질문을 했더니 `애이불비(哀而不悲)'한 마디로 대답하셨다. 슬프기는 하지만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거칠고 투박한 악기면서도 연주자의 테크닉에 따라서 구슬프고 아름답게 들리는 것도 애이불비(哀而不悲)악기 고유의 특징으로 보고 싶다. 오늘따라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해금 연주가 더 구슬프게 들린다. 요즘 사람과의 관계에 지쳐 있는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속으로는 힘들고 슬프지만, 겉으로는 나타내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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