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덫
원숭이 덫
  • 이은일 수필가
  • 승인 2019.06.2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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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은일 수필가
이은일 수필가

 

집 정리를 하다가 책장 구석에서 우쿨렐레를 발견했다. 몇 년 전 읍사무소 평생학습프로그램에서 배우던 악기다. 기타보다는 크기도 작고 코드가 간단해서 연주하기는 쉬웠던 것 같다. 새 노래나 주법을 배운 날이면 집에 돌아와서 몇 번이고 잘 될 때까지 연습했었다. 가끔 지역 행사에 공연 봉사도 다녔는데, 부족한 실력보다도 단체복으로 입었던 민소매 원피스를 더 민망해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음악적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흥이 많고 음악을 사랑했던 것 같다. 남편이 운영하는 동물병원 건물 옥탑에 작은 음악실이 있는데 거기엔 드럼이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쯤이든가 가족밴드를 만들어서 정식으로 교습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남편은 베이스기타, 큰딸은 건반, 작은딸은 플루트, 아들은 기타. 그때 내가 담당한 악기가 드럼이었다.

남편 꿈 중 하나가 전원주택을 짓고 음악실을 잘 꾸며서 훗날 식구들이 모일 때면 다 같이 합주하는 거였다. 그래서 고등학생이었던 큰딸을 빼고는 매주 두 시간씩 열심히 배우고 매일 연습을 했었다. 서툰 불협화음이어도 깔깔대며 연습하던 그 시절이 모두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학교 때문에 아이들이 한둘 집을 떠나게 되면서 자연스레 악기들도 연주를 멈췄다. 언젠가 남편의 꿈처럼 다 함께 모여 한바탕 신명 나게 연주하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민화, 서예, 유화, 한지공예, 종이접기, 목공 등 미술 쪽으로도 두루두루 입문했다. 운동도 볼링, 수영, 배드민턴, 골프, 사교댄스……. 다양하게도 배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재봉틀로 옷도 만들어 입히고, 커튼이나 식탁보 같은 것도 만들어서 썼다. 남편이 로터리 회장이었을 때는 정보화 교실에서 배운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그동안의 활동내용을 영상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난 뭐든 배우고 직접 해보는 걸 흥미로워했다. 사실 하고 싶은 게 또 있다. 바리스타랑 제과제빵도 배우고 싶고, 이번에 개축한 주방에 어울릴 6인용 우드슬렙식탁과, 반려묘 밍이를 위한 원목 캣타워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

이것저것 많이 배우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무엇하나 제대로 전문가다운 것이 없다는 게 문제다. 돌아보니 내 목표는 항상 `하고 싶은 만큼만'이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노래 몇 곡쯤, 벽에 걸고 싶은 그림 계절별로 서너 점씩, 지인들과 어울려 같이 즐길 수 있는 실력 정도면 되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최고가 되려 했더라면, 이만큼 다양한 경험을 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하지만 어느새 지천명, 기운도 예전 같지 않고,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긴 하다.

미얀마의 원주민들은 원숭이를 잡기 위해 목이 좁고 배가 불룩한 투명항아리를 나무 밑동에 묶어두고, 그 안에 제일 크고 탐스러운 열매를 넣어놓는다고 한다. 좋은 것을 쉽게 갖고 싶은 원숭이는 손을 넣어 열매를 움켜쥐고는 욕심 때문에 놓지도 꺼내지도 못하다가 결국 사람들에게 잡히고 만다는 것이다. 열매를 따기 위해 나무에 올라가길 선택했다면 덫에 걸리는 일 따윈 없었을 텐데.

요즘 나는 글쓰기와 민화에 집중하고 있다. 내가 그린 그림으로 삽화를 넣어 진솔하게 풀어낸 소박한 수필집 한 권 쓰고 싶은 소망이 있다. 항아리 속 걸작을 욕심내진 않으리라. 덫에 걸려 시간에 덜미 잡히는 일 없도록, 비록 벌레 먹고 못생겼더라도, 열매를 따기 위해 직접 올라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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