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선 철도에 담긴 역사를 찾아서
경부선 철도에 담긴 역사를 찾아서
  • 윤나영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 승인 2019.06.25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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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나영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윤나영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문화재활용실장

 

2018년 남북관계가 급물살을 타면서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던 주제 중 하나는 기차여행이었다. 이대로 남북관계가 좋아진다면 조만간 부산부터 기차를 타고 서울과 평양을 지나 시베리아를 횡단해 유럽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섞인 바람이 종종 들려오곤 했다. 비행기로 한나절이면 갈 수 있는 유럽이지만,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은 빠름을 강조하는 이 시대에 오히려 진정한 여행의 로망처럼 느껴졌다.

지금의 이 느낌과 반대로 백여 년 전만 해도 기차는 그야말로 스피드의 상징이었다. 1876년 최초의 근대적 외교사절단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수신사 김기수 일행은 요코하마에서 기차를 처음 타보고, 그 속도가 우레와 번개 혹은 회오리바람과 같다며 감탄했다. 이후 조선은 부국강병의 수단으로 철도 개설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자체적으로 철도를 건설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첫 철도는 외세에 의해 개통되었다. 1896년 미국인 모스가 시작했던 경인철도 공사는 부설권이 넘어가면서 일본에 의해 1899년에 완공됐다. 이후 일본은 대륙침략과 식민지 수탈의 목적으로 경부선,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을 잇달아 개설하였다.

그 중 부산-대전-서울을 잇는 경부선은 경인선의 뒤를 이어 1905년 개통됐다. 이 공사에는 우리 백성 426만이 동원되어, 3년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432km에 달하는 구간을 완성했다. 이후 경부선은 일제의 식민수탈 수단으로 이용되었지만, 광복 이후에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중심 통로로 활용되면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성장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충북 영동에 가면 경부선 역사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현재도 운영되고 있는 심천역은 1934년 경부선의 수송량이 많아지면서 세워진 역사(驛舍)로, 2006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담한 역사 건물은 처음 세워졌을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역 앞의 넓은 광장은 전성기 때 수많은 이용자로 붐볐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비록 이제는 하루에 9번밖에 기차가 정차하지 않는 간이역이지만, `옛 추억이 머무는 역'으로 영동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경부선 역사(歷史)의 흔적은 추풍령에도 남아있다. 20세기 초 운행되었던 열차는 물을 끓여 움직이는 증기기관차여서 운행 중간 중간 물을 채워 넣어야만 했는데, 추풍령역 급수탑이 바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했던 시설이다. 지금도 건물 안에는 당시 사용하였던 펌프와 배수시설이 그대로 남아있다.

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근대문화유산도 있다. 영동역과 황간역 사이에 있는 노근리 쌍굴다리는 1934년 경부선 철도 교량으로 지어졌는데, 1950년 6·25 당시 이곳에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이 일어났다. 약 300명가량의 민간인이 희생된 이 사건의 흔적은 지금도 다리 벽면에 고스란히 남아 전쟁의 참혹함을 전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1930년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각계역도 경부선 철도 역사의 한 장면이다. 이처럼 영동에는 경부선 철도와 관련된 유적들이 곳곳에 있다.

오는 6월 28일은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철도의 날이다. 원래 철도의 날은 우리나라 최초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한 9월 18일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민족탄압의 수단으로 건설된 철도 개통일을 기념한다는 문제점을 인식해, 작년부터 조선이 철도국을 처음 창설한 6월 28일로 변경했다.

철도의 날에 대한 의미가 바뀐 것처럼, 철도의 의미도 계속 바뀌어 간다. 비록 시작은 일제의 침탈 수단이었지만 광복 이후에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중심축이었고, 미래에는 시베리아를 넘어 세계로 나가아는 통로가 될 철도. 언젠간 그 철도를 타고 유럽까지 여행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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