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의 늠름한 기개가 살아 숨 쉬는 괴산
느티나무의 늠름한 기개가 살아 숨 쉬는 괴산
  •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19.06.2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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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제58회 충북도민체육대회가 막을 내렸다.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괴산군이 개최하여 사흘간 진행된 이번 대회는 24개 종목에서 도내 각 시·군 대표 선수들이 연일 뜨거운 열전을 펼치며 승부를 겨뤘다. `함께해요 희망괴산 하나 되는 도민체전'이라는 슬로건으로 3일간 열띤 경쟁을 펼치며 도민의 화합과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는 축제의 장이 산 좋고 물 좋은 괴산에서 펼쳐진 것이다.

괴산은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명산이 많은 고장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유적지와 인물이 많은 고장이다. 신석기시대 유물과 유적이 연풍면 적석리와 칠성면 도정리에서 발견되고 있어 이때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필자가 1991년 목도중학교 근무 당시 괴강 유역인 감물면 유창리 일대에서 수습한 빗살무늬토기와 간석기는 이후 충북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로 이어져 새로운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이곳 괴산의 신석기유적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의 선사시대 서술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학계에서는 `신석기 유적은 큰 강가나 바닷가에서 발견'되어 교과서도 그렇게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한강의 지류인 괴강은 큰 강도 바닷가도 아닌 지역이므로 `큰 강'에서 `강'으로 서술을 바꾸게 된 것이다.

아무튼 괴산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살기 좋은 곳임에 틀림없음이 증명되었다. 그런데 왜 지명에 `괴(槐-느티나무 괴)'자가 들어갈까? `산(山)'이야 좋은 산들이 많은 지역이라 붙여진 지명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괴산은 삼국시대에는 삼국의 접경지대로 삼국이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던 지역이었다. 처음에는 고구려의 잉근내현, 상모현, 도서현이 되었으며, 그 뒤 신라에 속해 괴양현과 도서현이 되었다.

지명에 느티나무 괴자가 들어간 사연은 삼국사기에 나온다. 606년(진평왕 28) 신라의 장수 찬덕이 가잠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백제의 대군이 침입해 100여 일을 포위, 공격했으나 끝내 항복하지 아니하고 큰 느티나무에 머리를 받아 자결하였다. 뒤에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이 소문을 듣고 찬덕의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군인으로서의 높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이곳을 느티나무가 들어간 `괴산'으로 부르게 하였다고 전한다. 군내의 여러 곳에 남아 있는 산성터는 대체로 이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삼국시대의 역사를 증언해주고 있다.

그 후 고려시대에도 `괴주'라 불렸고,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장풍현이라 하고 감무를 두었다가, 1403년(태종 3)에 연풍현으로 고치고, 1413년에 현감을 두었다. 그리고 그 해에 `괴주'를 `괴산'으로 고쳐 군으로 승격시켜 지금까지 느티나무 지명이 이어지는 것이다.

괴산은 충북에서도 가장 오지에 속한 곳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오히려 21세기 친환경 미래 먹거리와 생태환경의 보고로 인류가 가장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어 새로운 발전과 도약이 기대된다. 아울러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뜻을 굽히지 않는 절개가 내포된 느티나무 `괴'의 이름에 걸 맞는 인재가 많이 배출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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