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장미는 경계를 넘는다
6월 장미는 경계를 넘는다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19.06.1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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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장미가 담장을 넘는다. 유월의 아우성이다. 길손의 눈길을 사로잡은 장미의 시간은 붉다. 6월은 왠지 숙연해지는 달이다. 안과 밖의 경계에서 망설였을 장미가 인간사를 대신해 고개를 숙인다. 갈등의 시간이 붉어 넘어온 장미에게 `왜, 넘어왔느냐?'고 물으니 경계를 넘지 않으면 숨이 막혀 남의 염장이라도 지를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며 흐느낀다. 앞서 핀 장미들이 붉은 꽃잎을 뚝뚝 떨어뜨리며 카펫을 깐다. 바람에 흩어졌다 모였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어느 판에 자리를 잡으면 유리할까 궁리를 한다. 어울리지 못하고 흩어진 잎들은 쉬이 밟히면서 사라진다. 내 눈과 귀동냥으로 읊어본 장미의 계절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것을 반영이라도 하듯 요즘은 땅과 물 사이가 불안하다. 2010년 3월 26일 서해 백령도에서 천안함이,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2019년 5월 30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허블레아니호가 남기고 간 여파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허블레아니호의 침몰은 국내가 아닌 헝가리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 뉴스를 접한 지구촌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운 마음에 눈시울을 붉힌다. 동족이 아니더라도 함께 눈물을 흘리는 인간 내면에 깊숙이 자리한 순수한 본성, 측은지심을 읽는다.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길 줄 아는 인간애이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짙푸른 서해안 바다는 펄펄 끓는 청춘들의 혈기처럼 용맹하게 다가왔다. 대한민국 건강한 청년이라면 거역할 수 없는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국가의 부름에서 빚어진 사건인 만큼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애도했다.

이유도 변명도 있을 수 없는 충성심을 바다는 그들을 부르지 않았다. 아직도 바다 어디에서인가 잠들지 않고 떠돌고 있을 6명과 46명의 영혼이 충성을 다짐하며 대한민국의 안보와 안전을 위해 깃발을 높이 휘날리며 항해하고 있는 것만 같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은 생방송을 통해 현장의 모습을 봤다. 전원 구출했다는 소식에 안도하며 침몰하는 세월호를 지켜봤다. 그러나 안도의 시간은 짧았다. 사망자와 실종자가 밝혀지면서 “도대체 이건 뭐지?” 하며 매체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이 사건에 이슈는 단원고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동참해야 하는 교육기관의 의무를 따랐을 뿐 그들의 순종심을 바다는 부르지 않았다. 아직 피지 않은 청춘의 함성이 진도 앞바다 팽목항에서 미지를 향해 꿈을 키우고 있을 것만 같다.

201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일어난 헤블레아니호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여행은 의무나 책임감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자본주의가 낳은 베블런의 여가문화가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로 이어지는 개인의 취향에 따른 사회 현상이다.

가족과 연인과 지인들이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넓은 세상을 이해하고 가치관을 키워가고자 하는 마음이 클 것이다. 세상의 변화 속에 경제와 함께 성장한 국민의 문화 수준이 해외여행이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기쁨과 낭만으로 가득했을 그들의 여행은 다뉴브강에서 유랑 중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그 사회가 만들어놓은 법과 규범을 지키며 살아간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특별히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면 별 탈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돌다리를 두드리며 걷는 것이 능사만은 아닌 시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사건들을 보면서 생명의 소중함이야 측량할 수 없지만, 사건 뒤에 벌어지는 일들은 그다지 석연치 않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들의 주변은 쉴 새 없이 쨍그랑거린다. 강도 바다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짐짓 출렁인다. 장미도 붉은 잎을 뚝뚝 떨어뜨리며 고개를 숙이는 6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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