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음악과 함께하는 한국인의 인생사
트로트 음악과 함께하는 한국인의 인생사
  • 이현호 청주대성초 교장
  • 승인 2019.06.1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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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현호 청주대성초 교장
이현호 청주대성초 교장

 

얼마 전에 미스트롯이라는 음악 프로그램이 대성공을 이루었다. TV만 켜면 아이돌 그룹들의 춤과 노래만 나오던 터라 나이 든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장르였지만 오랜만에 어릴 적 많이 들었던 노래와 노래방에서 단골로 부르던 가요들이 정말 노래 잘하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구성지고도 신나게 잘들 불러 송가인 이라는 트롯의 전설을 탄생시켰다. 물론 1등을 한 송가인 외에도 많은 트롯 가수들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저미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전통가요가 빛을 발하는 좋은 계기가 됐다.

트로트(Trot), 혹은 뽕짝은 대한민국의 음악 장르로 반복적인 리듬과 엔카의 음계, 남도민요의 영향을 받은 떠는 창법이 특징인 장르이다.

20세기 일제 강점기에 유입된 미국의 춤곡인 폭스트로트가 그 어원이며 한국, 일본, 미국, 그리고 유럽 국가들의 다양한 음악들이 혼합돼 탄생했다. 일본에서는 엔카가 발전하고 조선인들은 주로 서양의 번안곡이나 한국의 작곡가들이 작곡한 곡들을 노래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조선의 가요는 엔카와는 다른 장르의 노래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193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서는 음반 산업과 라디오 방송으로 대표 되던 거대 매체가 자리 잡게 되었다. 주요작품으로는 30년대 중후반 트로트의 주류화를 결정 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나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등이 있다.

광복과 함께 트로트는 더욱 발전하게 됐는데 6·25를 배경으로 한 어려운 시대의 아픔을 그린 애달픈 노래로 국민의 시름과 고통을 대변했다.

1950년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기간 동안 `전우여 잘 자라', 신세영의 `전선야곡'과 같은 전쟁가요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휴전 이후에는 전쟁의 아픔과 실향민의 비애를 그린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과 같은 곡이 유행했다. 특히 1954년에 이해연이 발표 한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한국 전쟁의 아픔을 깊이 담아냈다는 평가를 얻어 크게 히트했다.

1957년에는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대한의 대표가수 이미자가 데뷔했으며 1959년경부터 LP 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트로트는 1960년대 이후 하나의 장르로 굳어졌다. 이 장르가 뽕짝이라는 별칭을 얻은 것도 이 무렵이다. 1967년에는 남진이 부른 `가슴 아프게'가 크게 히트했고, 같은 해에는 그의 라이벌이자 후일 국민 가수로 불리는 나훈아가 데뷔했다.

1970년대 말 조용필이라는 대형가수가 등장해 `미워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등의 트로트 가요를 히트시켰다. 그러나 트로트는 젊은 가수들의 발라드나 아이돌 그룹의 랩과 댄스에 밀려 별로 대중적이지 못했다. 2000년대 장윤정이나 박현빈 등의 노래에 이르면서 더욱 심화됐으며 음악적으로도 더 화려해졌다.

음악 장르야 어찌 되었든 트로트는 근대에서 현대로 오는 시기에 우리 민족에게 무한한 감동과 그리움,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요즘 같이 혼탁하고 어려운 경제난과 정치 속에서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트로트가 나와 전 국민이 한마음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무튼 전통을 잊지 않고 우리의 음악을 창조한다는 것은 정말 흐뭇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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