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담(手談)
수담(手談)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19.06.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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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대화를 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소리를 내어 입으로 하는 대화, 표정을 보고 침묵 속에서도 할 수 있는 대화, 또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언어를 모를 때 하는 몸짓 대화. 하지만 표정이나 몸짓으로 하는 대화는 입말로 하는 대화만큼 의사소통이 명확하지 못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나라의 말을 배우려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나는 요즘 색다른 말을 배우는 중이다. 그것은 손으로 하는 대화다. 그런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저 손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머릿속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집중해야 비로소 알게 되는 말이다. 잠시 딴생각이나 상대방의 말을 허투루 들었다간 낭패를 보기도 한다. `수담', 바둑을 다른 말로 이르는 말이다. 사전에는 `서로 마주앉아 말이 없이도 뜻이 통한다는 뜻으로, 바둑 또는 바둑을 두는 일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시간도 필요하고 그 언어만의 특징을 잘 이해해야 한다. 내가 가진 직업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는 우리나라 언어를 외국인들에게 알려주는 한국어 강사도 내가 가진 직업 중의 하나다. 외국인 학습자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설레기도 하고 즐겁다. 외국인 학습자들에게 수업하면서 내가 제일 고민하는 부분은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말을 쉽게 풀이해서 알려주고 이해시켜야 할 것인가이다.

요즘은 다문화 여성들의 초등 검정고시 대비반 수업을 하고 있다. 내가 수업을 하는 과목은 국어와 사회, 도덕이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과정의 공부인데도 외국인들에게는 어려운 낱말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매시간 단어 풀이에 대한 시간이 많이 할애될 수밖에 없다. 수업을 하면서 나는 자주 내가 만약 외국에 가서 이렇게 수업을 듣는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학습자들이 질문할 때면 이해를 할 때까지 그 말에 대해 풀이를 해 주려고 노력한다. 다행히도 지난 학기에 많은 학습자가 검정고시에 합격해서 고맙기도 했다.

며칠 전 나는 수담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겁도 없이 대회를 치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지 웃음만 나온다. 수담의 기초 언어도 아직 다 터득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내 상대는 매년 우승을 했던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니 내 이야기가 얼마나 우스웠을까. 승패는 아주 빠른 시간에 나 버렸다. 흑돌을 잡았던 내 집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바둑 판에는 하얀 돌이 지은 집만이 있을 뿐이었다. 왠지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정중히 “잘 배웠습니다.”라고 사과를 했다.

실패는 성공의 한 과정이라고 했다. 나의 수담 실력은 아직 애기보도 벗지 못한 수준이다. 하지만 포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서툴고 때로는 상대방의 말을 엉뚱하게 알아듣는다 해도 열심히 수담을 배우는데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요즘 수담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하나의 화두가 되고 있다. 급하고 진중하지 못한 나를 변화시켜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한다. 더불어 수담을 배우면서 달라진 게 있다. 그것은 외국인 학습자를 대하는 내 마음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들의 아프고 지친 마음까지도 들여다보려고 하는 나의 마음이다. 부디 지식만 알려주는 교사가 아닌, 지견을 소유한 사람이고 싶다. `수담'으로 내 마음을 열심히 수양한다면 그리될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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