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세상
서러운 세상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9.06.1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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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참으로 서러운 세상이다. 나이가 많아도 서럽고, 못 배운 것도 서럽다. 살면서 당하는 설움 중에 나이로 밀리고 학벌로 밀리는 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며칠 전 일본을 다녀왔다.

자유여행으로 다니다 보니 택시를 탈 일이 꽤나 많았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높은 물가보다 더 놀란 사실은 이용한 택시 기사의 나이다.

탔던 택시의 앞좌석에 부착된 운전자의 개인 정보를 들여다보니 거의 1930년대 생이었다.

한 두 명이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간과했을 일이다. 80 중반을 넘긴 택시기사를 자주 접하다 보니 나이 많은 것도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고령의 일본 택시기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 데는 아마도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운전면허증 반납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나라 지자체들의 행정과 비교됐기 때문이다.

전국 지자체는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고령 운전자에 대한 운전면허증 자진 반납을 추진하고 있다.

괴산군은 75세 이상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괴산사랑 상품권 10만 원 어치를 지급할 계획이다. 본인 명의로 차량을 소유하고 차량등록증을 제출한 운전자가 대상이다. 청주시도 지난 5월부터 70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면 10만 원 상당의 청주사랑상품권 또는 교통카드를 주고 있다. 전북 정읍시는 다른 지자체보다 지원금을 두 배로 책정해 지난 4월부터 70세 이상 운전자가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하면 20만 원 상당의 교통카드를 지급한다.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건수를 줄이는 데 정부도 나섰다. 정부는 올해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갱신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였으며 고령운전자 교통안전 교육을 이수해야 면허 취득과 갱신이 가능토록 했다.

여기서 든 생각 하나. 나이가 많으면 운전하는 게 위험할까? 젊은 사람이 운전대를 잡으면 과연 안전할까?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며 면허증 반납을 경쟁이라도 하듯 현물공세로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만난 일본의 초고령 택시기사에게서 느낀 점은 투철한 직업의식이었다. 나이 먹었다고 손 발 묶어 놓는 정책 추진에 의구심을 품는 계기가 됐다.

교육정책을 들여다보자. 정부가 내년부터 마이스터고를 대상으로 고교 학점제를 전면 시행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기도 한 고교 학점제는 대학생처럼 고등학생들도 적성과 희망 진로에 따라 필요한 과목을 선택해 배우고 기준학점을 채우면 졸업을 인정받는 제도다. 말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 교육부에서 열린 전국 마이스터고 교장단 회의에서는 갑론을박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고교 학점제를 어떻게 시행할지, 학점을 대학처럼 이수, 미이수로 분류해 재수강하도록 할 것인지 확정된 안이 없는 상황에서 결정된 것은 내년에 무조건 시행한다는 것이다.

마이스터고에 진학한 학생들의 진로는 당연히 취업이다. 마이스터고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직장에서 고졸자라고 차별받지 않는 것이다.

마이스터고 교장이 하소연한다. 취업에 성공한 졸업생이 5년 지나면 학교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잘 다니는 직장 그만두고 대학을 가야겠다는 제자를 말릴 수도 없단다. 한번 고졸자는 영원한 고졸자로 낙인찍는 사회에서 제자가 선택할 길은 뻔하다.

고령운전자는 나이로 소외당해 서럽고, 마이스터고 학생들은 학벌로 차별받아 서럽다. 이런 사회에서 무엇을 꿈꿀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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