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미용실
그 미용실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19.06.17 20: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단골이 된 지 어느새 강산이 두 번은 바뀌었다. 그 미용실에 머리를 손질하러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이십 년, 삼십 년 지기라 자랑한다. 직원이 여러 명 있고 미용실이 넓은 그런 곳과는 거리가 멀다. 미용실 원장이자 단 한 명뿐인 미용사, 그녀는 잠시도 손이 쉴 사이가 없다. 며칠 전 아침 일찍 파마를 하려고 헐레벌떡 갔지만, 벌써 할머니들 세 분이 날 잡아 파마하러 오셔서 미용사는 바쁜 눈치다.

그곳에 오는 손님은 때론 바쁜 미용사의 일손을 돕는다. 파마 롤을 마는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수작업에 드는 시간은 기본으로 걸리는 시간이 있다. 손님은 의자에 앉아 순서만 기다리지 않고 미용사가 커트를 하고 나면 손님 중에 누군가는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쓸어 정리한다. 건조대에 빨아 널어놓은 수건도 걷어오면 손님들이 알아서 손을 보태어 개켜서 진열장에 넣어준다. 나도 더러는 수건을 반듯이 접어 넣어 주는데 그렇게 별일 아닌 일을 돕고 나면 바쁜 동기간 일손을 도와준 것처럼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 미용실에는 편안함이 있다. 수십 년 단골을 자처하는 사람이나 처음으로 미용실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도 금방 가까워진다. 벽에 걸려 있는 TV를 보며 어느 드라마의 악역을 맡고 있는 연속극 주인공을 같은 목소리로 험담하며, 또는 옥수수나 고구마 사과를 나눠 먹으며 막역한 사이처럼 가까워진다. 미용사는 그저 바쁘게 머리 다듬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 같지만 모든 편안함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주인 미용사의 수더분한 성격에서 기인(起因)한듯하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남편과 나는 때로는 그녀 흉을 볼 때도 있다. 남편이 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그 미용실에 머리를 맡긴 지 5년쯤 되었다. 흰머리가 많아지고 본인의 헤어스타일이 맘에 안 들어 했었다. 염색을 시작하더니 옷을 타는지라 너무 오래 고생을 하다 보니 염색도 포기하고 본인의 머리만 타박하던 때가 있었다. 이발관만 고집하는 남편을 파마를 해보라 설득을 하여 그때부터 같은 미용실 단골이 되었다. 그렇지만, 미용사 재주가 아무리 좋아도 때로는 한 번씩 머리 커트를 기대보다 짧게 한다거나 마음에 안 들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식탁 머리에서 우린 “미용사는 사람들 짧은 머리가 가장 좋은가 보다”라고 맞장구를 치며 흉을 보기도 한다.

미용실에서 제철 농산물을 사고팔기도 한다. 주로 미용실에 오는 고객들 지인들이 농사지은 고구마나 과일 등 농산물을 소개하여 필요한 사람들이 사고, 물건이 좋으면 입소문이나 줄줄이 구입요청을 하니 금 새 불티가 난다. 물건만 사고파는 게 아니라 장아찌를 아삭하게 담그는 방법, 김치를 어떻게 담그면 `더 맛나다.' 등등 세상을 살아가는 상식과 정보도 날마다 새로운 곳이다.

미용사의 두 아들이 개구쟁이일 때부터 드나들었으니 이젠 청년이 된 두 아들도 손님들과 안부를 묻곤 한다. 소도시이지만 주거 형태가 아파트에 많이 살다 보니 같은 통로 위 아래층에 살아도 서로 왕래는 없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인사 정도가 끝이다. 젊은 사람들은 점점 개인주의가 심해지고 소통이 부족한 시대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