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복지 논란, 남 탓할 일 아니다
현금복지 논란, 남 탓할 일 아니다
  • 이형모 기자
  • 승인 2019.06.16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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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형모 취재총괄팀장(부국장)
이형모 취재총괄팀장(부국장)

 

지자체들의 현금복지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전국 기초단체 15곳이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란 기구를 꾸렸다.

표면적으로는 선심성 현금복지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면서 일부 지자체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것으로 보이지만 서울 중구청장을 압박하는 형국이다.

서울 중구청이 관내 만 65세 이상 기초생활 수급자와 기초연금 수급자에게 매달 10만원씩의 어르신 공로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서울시 자치구 중 노령화지수 1위, 초고령 빈곤율 1위라는 게 중구의 공로수당 지급 배경이다.

엉뚱한 곳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인근 성동구 주민들이 “우리는 왜 안 주냐”며 성동구청에 따진 게 화근이 됐다. 난감해진 성동구청장이 판을 키워 전국 15곳 기초단체장과 복지대타협특위 준비위원회를 꾸린 것이다.

그러나 복지대타협특위를 구성한 돈 없는 지자체장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명분이 약하다. 현금복지를 `지자체장들을 유혹하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복지대타협위는 지자체간 무분별한 경쟁이 일어나면 지자체 재정은 물론 국가 재정까지 위태로워진다고 경고한다. 다음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쯤으로 보는 시선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분명 지자체간 인구수와 재정자립도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중구청만 보더라도 인구가 다른 자치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 복지정책을 집행할 여력이 있다.

무엇보다 중구청은 공로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하기 전에 각종 전시성 예산을 삭감하는 재정 효율성 확보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어르신 공로수당을 단순히 `묻지마 현금살포'로 폄훼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여기에 있다.

복지대타협위 구성의 명분이 약하다는 이유이기도 하고, 오히려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따져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정책을 집행하는 자치단체장을 다른 자치단체장들이 집단으로 압박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표방해 온 `보편적 복지'가 안착하는 데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번 현금복지 논란은 우리 사회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지방재정분권이 지지부진한 상황이 논란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지방재정분권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현금복지 정책 실행과 정치적 책임이 모두 해당 자치단체장에게 달려 있어 이런 논란은 불거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지방자치제도가 이번 사안을 촉발시킨 배경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번 현금복지 논란은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미래에 관한 냉정하고 정확한 진단을 더 늦춰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경제성장 동력은 약화하는데 평균 수명 연장으로 복지수요는 확대되는 게 현실이다. 주춤하고 있는 경제성장 때문에 복지를 희생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경제성장을 도외시한 채 복지만을 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현금복지를 시행하는 지자체를 탓할 게 아니라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지자체 예산 집행이 효율적으로 되고 있는지 소모성 경비와 전시성 행사를 줄여 복지에 사용할 예산은 없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하는 게 순서다.

아무튼 복지대타협특위가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는 장이 아니라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미래를 논의하는 건강한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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