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양이 이야기(1)
미양이 이야기(1)
  •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 승인 2019.06.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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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박윤미 충주예성여고 교사

 

“첫째는 열두 살이 되고, 둘째는 다섯 살이야. 아니, 여섯 살 되었나? 막내도 있는데, 아직 일 년이 안 됐어. 칠 개월? 아, 정확히 모르겠다.”

“우와, 셋이나 돼요?”, “나이 차가 많네요.”, “간난 아기가 있어요?”, “아이들 나이 잘 모르세요?”

수업 중 어쩌다 나온 가족 이야기에 아이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차오른다. 뒤이어 나올 이야기를 기대하는 눈빛이 햇살처럼 퍼져 교실에 생기가 돈다.

“근데, 막내가 만날 맞으면서도 첫째 둘째를 졸졸 쫓아다녀. 막내가 다가가면 언니들이 퍽 쳐. 그러면 또 벌떡 일어나서 또 쫓아가. 자꾸 맞는 데도 좋다고 쫓아다녀.”

폭포수 같은 웃음소리가 바로 잦아들고, 이내 막내가 불쌍하다, 언니들이 너무하다. 집안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의견들이 오가며 수런수런 하였다. 고양이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도, 아이들은 각자 형제·자매와의 관계를 비교해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 집 막내 고양이 이름은 미양이다. 우리 학교에서 최소한 6년 이상을 살아온 터주 마님 `양말'이의 새끼로 `미니 양말이'라는 뜻이다. 양말이는 온몸은 검은데, 네 발만 하얗다. 학생들의 작명 감각은 항상 감탄스럽다.

지난해 5월 양말이의 배가 엄청나게 부르고 젖꼭지 부분의 털들이 다 빠져 있는 것이 출산이 임박해 보였는데, 며칠 안 보이더니 배가 홀쭉해진 모습으로 혼자 나타났다. 한 달여가 지나자 그동안 어디에 숨겨 키웠는지 여러 마리의 새끼들을 데리고 나왔다. 간간이 고양이 가족 소식을 내게 전하는 반 아이들의 조잘대는 소리에 따뜻함과 행복감이 가득 묻어 있었다.

맑고 화창한 어느 가을날 점심 급식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많은 학생이 빙 둘러앉거나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파란 잔디 위에서 너덧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이 여기저기 자유로이 뛰어놀며 서로 장난을 치다가, 누운 향나무 속으로 숨바꼭질을 하곤 하였다. 사람들을 경계하면서도 엄마가 근처에 있다는 믿음으로 모두 활달하고 천진난만하였다. 이를 바라보는 학생들은 연발 감탄사를 터뜨렸고, 나도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한마음이 되었다.

그런데 동시에 안타까운 감탄사가 조용히 들렸다. 새끼 한 마리가 양말이에게 껌딱지처럼 매달려 있는데, 비쩍 말랐고 다른 새끼 고양이들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여 자꾸만 나뒹굴면서도 칠전팔기로 엄마 젖꼭지를 찾고 있었다. 가만 보니 뒷다리 하나가 짧았다.

“어머, 어떡해. 다쳤나 봐, 발이 없어. 누가 병원에라도 데려가야 하는 거 아냐?”

무심결에 내가 한 말이다.

그날 밤 내내 부끄러워 잠을 설치게 한 말이었다. 그 많은 학생 중 누군가가 나보다 더 큰 용기를 내길 기다리는 마음이라니.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은 충만한 교사지만 행동은 가르침을 받은 학생이 하길 바라는 교사였다. 나는 여태 그렇게 살아왔구나. 비틀비틀 쓰러지던 조막만 한 녀석의 모습이 계속 어른거렸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직접 하자. 일단 발목 상처 때문에 파상풍에 걸린 건 아닌지, 건강 상태를 확인하자. 혼잣말로 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미양이와 인연을 맺은 것이 지난해 10월 17일이었으니, 함께 산 것이 벌써 8개월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좋은 의도에서 선택한 사소한 결정으로 뜻하지 않게 큰 어려움에 빠지기도 하고, 첩첩산중을 정신없이 헤매다가도 어느 순간 산자락을 빠져나와 눈앞에 펼쳐진 평원을 발견하는 때가 오기도 한다. 미양이와 지낸 지난 8개월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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