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강 숲 속에 수줍게 숨어 있는 정자, 영동 함벽정
비단강 숲 속에 수줍게 숨어 있는 정자, 영동 함벽정
  • 김형래 강동대 교수
  • 승인 2019.06.1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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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시선 땅과 사람들
김형래  강동대 교수
김형래 강동대 교수

 

금강(錦江)은 전북 장수군 수분리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충청도와 전북을 적시며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에 이르러 서해로 흘러들어 간다. 발원지에서 강 하구까지 천 리를 흐르며 상류인 금산지역에서는 적벽강(赤壁江), 영동지역에서는 양강(楊江), 공주에 이르러서는 웅진강, 부여에서는 백마강(白馬江)이라 불린다.

양강(楊江)이 관통하는 양산면은 신라와 백제의 끊임없는 싸움의 역사 속에 신라 김흠운 장군의 애환과 양산가(陽山歌)의 유래가 깃든 곳이다. 벌판이 넓고 비옥한데다 양강 변의 수려한 절경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도 그의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안동(安東)의 하회(河回)와 함께 살기 좋은 마을로 손꼽았다.

이 일대 강변에는 여의정(如意亭), 채하정(彩霞亭), 강선대(降仙臺), 함벽정(涵碧亭), 봉양정(鳳陽亭), 봉황대(鳳凰臺), 한천정(寒泉亭)과 같은 고졸하고 풍류 넘치는 정자들이 즐비하다.

강변에 펼쳐진 넓은 솔밭은 조선시대 때 연안부사를 지낸 만취당(晩翠堂) 박응종(朴應宗)과 관련이 있다. 그는 말년에 관직을 내려놓고 이곳으로 낙향하여 언덕 위에 만취당(晩翠堂)이라는 정자를 짓고 주변으로 손수 해주산 해송 종자를 뿌리고 소나무 밭을 만들었다. 그는 이곳에서 후학들에게 예절과 풍속 및 정치와 역사를 강학하며 시간을 보냈다.

함벽정(涵碧亭)은 양강 가의 커다란 암반 위에 서 있다. 정자에 오르면 굵다란 참나무들 사이로 강물과 먼 산줄기가 상쾌한 풍경화를 그려낸다. 옛 시인들이 시를 읊고 글 쓰는 이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라 전한다. 함벽정에서 바라보는 비봉산(飛鳳山) 낙조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이곳에서 보이고 들리는 경치를 “함벽정 팔경”이라 하여 따로 즐겼을 정도로 풍치가 탁월했다고 한다.

함벽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정자의 마루는 우물마루이고, 주위로는 卍자살의 교란(交欄)을 설치하였다. 정자 내부에는 1칸의 방이 꾸며져 있다. 대개 정자에 설치된 방은 빗줄기 들이치는 우중충한 날씨나 추운 겨울날에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설치하는데, 함벽정의 방은 온돌 없이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어 주로 여름철 비바람을 피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자 내에는 함벽정(涵碧亭) 현판, 함벽정 창건운, 함벽정 창건기 등이 전한다.

`청산벽계(靑山碧溪)'라는 말이 있듯이 산이 푸른 것을 `청(靑)'이라 하고, 물이 푸른 것을 `벽(碧)'이라 한다. 함벽정의 `함벽'은 `물의 푸르름을 머금고 있다'는 뜻이니, 정자 이름에 강호(江湖)의 푸름을 녹여 자신을 적시고 싶은 탐승객(探勝客)들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수의 좋은 경치는 오직 여유로운 은둔을 사모하고 일신의 수양을 즐거워하여 세속과 떨어져 원유(遠遊)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 때문에 산수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은 부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고, 부귀를 너무 즐기는 사람은 산수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없다. 함벽정은 부귀보다 자연의 도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의 정신적 고향이었다.

함벽정에 올라 적막감에 싸인 양강의 모래톱과 먼 산을 바라보면 세속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느낌이다. 해질 무렵이면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 강변을 감돌고, 송호리 솔밭에 새들이 조용히 내려앉을 때면 양강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1978년 황순원 원작 소설 <소나기> 영화 촬영지로도 알려진 이곳 강변은 아직도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 있다. 지금도 양강변 곳곳에 남아 있는 영화 속 풍경들이 고향과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평화스러움과 안온함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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