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없는 새
날개 없는 새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9.06.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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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이사를 했다. 짐 정리는 뒷전이고 책장 앞에서 떠나지 못한다. 한지로 만든 보물 상자 세 개, 보물 상자를 하나하나 열면서 이미 마음은 핑크빛이다. 설렌다. 그 속엔 필름 사진과 육아 수첩 그리고 아이들 상장이 있다. 이십 년을 훌쩍 넘어버린 상장들, 코팅을 해 보관을 했음에도 누렇게 변색이 되어 세월의 흔적을 껴안고 있었다. 마지막 상자 지퍼 백에 보관된 쭈글쭈글 구겨진 색종이 카네이션은 과거로 쳇바퀴를 돌려놓고 있었다. 여전히 푸른 이파리에 핑크빛 색종이를 잘게 잘라 꽃수술을 만들어 돌돌 말아 꼭꼭 여민 큰아이가 만든 카네이션, 작은아이가 동그랗게 가위로 꽃 모양을 납작하게 오려 만든 해바라기 꽃을 닮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안고 쓸어내렸다. 중앙엔 `엄마 사랑해요'작은 손으로 비뚤비뚤 꾹꾹 눌러쓴 꽃송이가 꼬깃꼬깃한 상태로 보관돼 있었다.

그때는 가슴에 꽃을 다는 게 왜 그리 부끄러운지 카네이션꽃을 만들어오면 가슴에 달지도 못하고 화장대에 밀쳐놓았다. 그 많던 종이카네이션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딱 두 개만 남아있는 색종이 카네이션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두툼한 기저귀를 엉덩이에 매달고 아기펭귄처럼 뒤뚱뒤뚱 거리며 영아방에서 어린이집으로 그리고 유치원으로 내달리던 작은아이. 또래보다 말을 더디게 하는 바람에 일찍부터 영아방에 보냈다. 어쩜 말을 배운다기보다 나 편하자고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선생님을 엄마라 부르며 뒤뚱뒤뚱 놀이방으로 사무실로 주방으로 선생님을 졸졸졸 따라다녀 아기펭귄이란 별명이 붙었다.

본래 펭귄은 사람들의 양육방식과 흡사하다. 펭귄은 혹한 추위에 알을 낳으면 수컷은 알을 품고 어미는 먹이를 잡아온다. 어미가 알을 낳고 먹이를 구하러 나가면 알을 지키는 수컷들은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발등에 알을 올려놓고 포란하기 시작한다. 지느러미처럼 생긴 날개는 퇴화되어 날지도 못하여 불편하지만 혹한 추위에 포란하고 있는 모습은 어버이날 노래가사 중`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면/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처럼 극진하다.

그뿐인가 부화된 새끼 펭귄을 또다시 발등에 올려놓고 그동안 위 속에 저장해 두었던 먹이(펭귄밀크)를 토해서 먹여 성장시킨다. 아이가 아장아장 걸으면서 영아방, 어린이집으로 독립하는 것처럼 펭귄도 서로서로 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려 무리지어 `탁아소, 유치원'처럼 집단을 형성하며 독립시킬 준비를 한다.

새끼 펭귄의 털은 방수기능이 없어 비라도 내리는 날엔 혹한에 위험한 상황에 부닥친다고 한다. 때문에 발등에서 털이 자라고 먹잇감이 많을 때 독립을 시킨다는데, 난 일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영아방 등원차량에 밀어 넣다시피 했으니. 영아방 선생님하고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짠했다.

아이의 몸집보다 더 커 보이는 가방에 간식과 기저귀를 메고 가는 아이를 보면 가슴이 먹먹했다. 좌충우돌 부딪히면서 육아에 전념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후회하고 고민하는 날도 많았다. 그렇지만 독한마음으로 펭귄이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혹한에 알을 낳는 것처럼 마음을 다잡고 영아방으로 보냈었다.

꼬깃꼬깃 종이 카네이션을 만들었던 사진 속 아이는 결혼을 해 나를 할머니로 만들어 놓았다. 아이들이 머물던 자리는 휑하니 바람만 일고 기억 끄트머리 추억만 남았다. 쭈글쭈글한 종이 카네이션을 만지작거리며 상념 속으로 빠져드는 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할머닌가 보다. 핸드폰에는 나의 사진보다 손녀 사진이 더 많이 저장돼 저장 공간이 용량초과란다. 늦은 오후, 쭈글쭈글한 카네이션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쓸어 주름을 펴 다시 지퍼 백에 넣어 맨 위로 올려놓고 보물 상자 뚜껑을 꼭꼭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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